등록 : 2016.11.23 23:36
수정 : 2016.11.24 15:21
한-일 군사정보협정 문제점
오바마 ‘일 군사역할 확대’ 정책 일환
한-일 군수협정 등으로 이어질 전망
중국과 관계 악화 가능성 큰데다
한국 전략적 이해와 불일치
미 트럼프 행정부로 교체 과도기에
정부, 한쪽 옵션에만 졸속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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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국방부에서 체결되던 시각인 23일 오전 야당 의원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무효선언 및 간담회’를 열기에 앞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무효 선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소병훈·문미옥·강창일·이종걸 의원, 정의당 노회찬 의원, 민주당 이용득 의원,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민주당 이원익 의원.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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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로 한·일 양국은 본격적인 양자 군사협력의 서막을 열게 됐다. 한국이 일본군의 강점 상태에서 해방된 지 71년 만의 일이다. 미국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로 교체되면서 불투명성이 높아진 과도기에, 쫓기듯 서둘러 한-일 군사협력에 한 발 더 깊숙이 내디딘 것이 한반도 안보환경에 어떤 파장을 끼칠지 주목된다.
그동안 한-일 군사협력은 미군을 매개로 이뤄져 왔다. 북한의 침략을 직접 저지하는 지상군 중심의 주한미군과 한반도 유사사태 발생 때 즉각 한국에 투입되는 해·공군을 중심으로 한 주일미군이 자연스레 한-일 군사협력을 간접적으로 담보해왔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일본 영토에 유엔사령부가 사용할 수 있는 7곳의 후방기지를 제공하고,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에 투입되는 미군을 ‘후방 지원’하는 구실을 맡아 왔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인 1950년 한국전쟁 때 이런 시스템이 선뵌 이래 미국을 매개로 한-일 군사협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은 오랫동안 대북 억제의 핵심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협정으로 한·일 양국은 앞으로 미국의 중계를 거치지 않고 민감한 ‘군사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됐다. 본격적인 군사협력이 정보협력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양자 군사협력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역설적인 것은 유례 없는 대북 강경책→남북 군사적 긴장 고조→대북 억제력 필요→한-일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한국 정부가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건국 이래 어떤 정부도 남북과 한-일 관계를 연동시키지 않았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를 연동시켜 한민족 내부 문제에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일 군사협력 강화는 상대적 퇴조세인 미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우선 미-일 동맹 강화와 일본의 군사적 구실 확대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난해 미-일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 재개정 등을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했고, 미-일 동맹의 위상과 구실을 글로벌 동맹으로 높였다. 이에 더해 미국은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유도해 미국 주도의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의 역량을 끌어올리려 한다. 2014년 3월 한·미·일 3국 헤이그 정상회의→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타결→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수순은 이런 구상에 따른 것이다. 물꼬가 터진 한-일 군사협력은 앞으로 더 심화되는 과정을 밟을 전망이다. 일본은 한-일 군사협력의 범위를 ‘정보’에서 실제 물자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의 하위 파트너로 한국의 전략적인 이해와 상충하거나 무관한 여러 군사협력을 요구 받을 위험도 상당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 되고 있다. 일·한의 안전보장 분야의 협력은 지금보다도 더 늘여야 할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한국의 전략적 이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중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큰 게 부담이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미 이에 대한 보복 조처로 드라마와 광고 등에 한류 금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지는 등 경제·문화 분야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교체되는 과도기에 한-일 군사협력 강화가 추진되는 것도 문제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과 한-일 협력 강화 등을 통한 중국 견제는 기본적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재균형 정책’의 군사 버전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 시설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정책과 거리를 두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실제 트럼프 당선자는 최근 재균형 정책의 경제 버전이라고 할 ‘티피피’(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재확인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 출범 뒤 후보 시절 발언대로 동북아 안보정책을 추진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섣불리 한-일 군사협력 강화라는 한 쪽 ‘옵션’에 ‘올인’하기보다는 상황을 봐가며 선택지를 넓히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병수 선임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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