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7 20:52
수정 : 2017.02.17 22:27
베트남 국적 여성, 11~13일 매일 호텔 바꿔
가는 호텔마다 “와이파이 잘 되나” 확인
무선인터넷은 도·감청 어려워
17일 오전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슬랑오르)주 세팡시의 반다르바루 살락팅기 지역.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이곳은 4~5층짜리 저층 호텔이 밀집해 있어 공항을 이용하는 숙박객들이 주로 머문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살해 사건에 가담한 베트남 국적의 여성 용의자가 머물렀던 호텔들이 있는 곳이다. ‘웅’ 소리를 내며 이륙하는 비행기 소리가 멀리 들리고, 곳곳엔 비행기 모형을 파는 기념품점도 많다.
<한겨레>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김정남에게 독극물을 뿌린 것으로 드러난 도안티흐엉(29)이 묵은 호텔들을 취재해 보니, 그는 범행 이틀 전인 11일부터 범행 다음날인 14일까지 이 지역 호텔 3곳을 옮겨다니며 머문 것으로 확인됐다. 흐엉은 날마다 호텔을 바꿨고, 옮길 때마다 호텔에 ‘와이파이’(무선인터넷)가 잘 연결되는지 집착했다.
흐엉은 토요일인 지난 11일 오후 5시께 맨 먼저 큐라식 호텔에 들어갔다. 이 호텔 직원은 흐엉이 “3층 방에서 하루 묵은 뒤, 12일 오후 2시께 떠났다”며 “특별한 점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흐엉은 이 호텔로부터 걸어서 3~4분 거리의 인근 시티뷰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시티뷰 호텔 직원은 “(흐엉이) 12일 오후 2시께 체크인하면서 이틀 동안 머문다고 했는데, ‘와이파이가 원활하지 못하다’며 하루 만에 떠났다”고 말했다. 흐엉이 이곳 호텔을 나간 시각은 13일 오전 11시께다. 직접 흐엉의 체크아웃을 담당했다는 이 직원은 “그는 매우 편안한 상태로 보였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살해된 직후였다. 흐엉이 범행 직후 먼 곳으로 도주하지 않고, 자신이 묵던 호텔 지역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흐엉은 13일 오전 9시26분께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김정남을 공격한 뒤, 인근 스카이 스타 호텔에 먼저 갔다. 이 호텔 로비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그가 9시36분께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호텔 안내 직원은 “오자마자 와이파이 상태가 괜찮은지부터 확인해본 뒤 숙박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항 범행 직후, 새로운 호텔에 와서 체크인을 한 뒤, 이전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 등의 절차를 태연하게 거친 셈이다. 그는 이전 숙소에서 짐을 챙긴 뒤 스카이 호텔에 다시 나타났다. 이 호텔의 제간 매니저는 “(흐엉이) 몸 절반 크기의 테디베어를 안고서 마스크를 써 얼굴을 가린 채 들어와 알레르기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나중에 공항에서 김정남을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된 뉴스를 보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김정남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는 16일 체포됐을 당시 휴대폰 2대를 갖고 있었으며, 이 중 하나는 심카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심카드가 없는 경우 통화는 불가능하고 와이파이 연결만 가능하다. 흐엉도 체포됐을 당시 휴대전화 3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흐엉이 와이파이에 집착한 것으로 보면, 용의자들이 서로 심카드가 없는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범행을 모의하거나 실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선인터넷 전화는 도·감청이 어렵고, 심카드가 없으면 전화의 소유자를 특정할 수 없어 은밀한 연락을 할 때 사용된다. 이들이 남성 용의자들과 무선인터넷으로 연락하며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흐엉이 들어왔다 나갔을 때의 모습을 다 기억하는 스카이 호텔의 제간 매니저는 흐엉이 “매우 잘 웃고 친절한 여성이었다. 들어올 땐 초록색 (콘택트)렌즈, 나갈 땐 파란색 렌즈를 꼈다”며 외모를 자세히 기억했다. 당시 그녀는 ‘엘오엘’(LOL) 티셔츠를 입었다.
흐엉은 이튿날인 14일 체크아웃도 없이 호텔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제간 매니저는 “(흐엉이) 호텔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방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며 “지난 15일 경찰 6명이 와서 폐회로텔레비전을 확인하고 영상과 (흐엉이) 호텔에 남겨둔 물품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호텔들에서 흐엉이 다른 용의자들과 함께 머물렀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들이 있었으나, 3곳의 호텔은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인근의 다른 호텔 직원은 “(두번째 용의자인) 인도네시아 여성도 이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세팡/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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