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9 16:05
수정 : 2017.02.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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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마트에 북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1면 커버기사로 다룬 현지 신문들이 놓여있다. 쿠알라룸푸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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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독극물은 화학 전문가의 정교한 조제품”
건장한 40대 남자 즉사 맹독에도 주변은 무해
예외적, 강력, 휘발성일수록 검출가능성 낮아
신경가스, 피마자씨 리신, 아편 화합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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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마트에 북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1면 커버기사로 다룬 현지 신문들이 놓여있다. 쿠알라룸푸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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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46)이 의문의 독살을 당한지 일주일이 됐지만 여전히 범행의 배후는커녕 범행에 사용된 독극물의 정체조차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지난 17일 사망자의 주검을 부검했다. 그러나 19일 첫 수사 상황을 중간 발표한 기자회견에선 “정확한 사인은 법의학팀의 최종 부검 결과를 받아야 발표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해 <에이피>(AP) 통신은 19일, 김정남을 극히 단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한 치명적 독극물의 정체와 그 배후를 확인하는 게 이번 사건의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정남이 인파로 붐비는 국제공항에서 2명의 ‘여성 요원’에게 암살당한 이야기 자체가 독극물 사건에 밝은 형사들조차도 고개를 흔들게 하는 것인데다, 김정남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할만큼 맹독성 독극물을 스프레이로 얼굴에 뿌렸다는 것도 제임스 본드의 ‘007 영화’를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경찰은 독극물 암살을 실행한 여성 용의자 2명과 이들의 배후로 보이는 남성 2명을 체포해 조사중이다. 이중 인도네시아 여성은 자기가 ‘코미디 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경찰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서, 김정남 살해를 둘러싼 음모론과 여러 추정들까지 무성해지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만일 진짜 범인들이 정보기관 등의 ‘화학 요원’이라면, 그게 누군지를 밝히는 게 최대의 난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전문가들이 끝내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지 못할 경우 피살자의 신체조직과 독극물 샘플을 일본이나 미국 연방수사국(FBI)로 보내 분석을 의뢰해야 할 수도 있지만 현실성은 크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법의학연구소의 독극물 분야 권위자인 올리프 드러머는 “독극물이 예외적일수록, 강력할수록, 그리고 휘발성이 강할수록, 검출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말했다.
독살사건의 독극물 파악 전문가들은 ‘쿠알라룸푸르 공항 사건’은 기이하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것을 운반하고 사용한 여성들과 주변 사람들에겐 아무런 해도 없었으면서 피살자를 단숨에 사망하게 한 독극물이 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법의학자인 브루스 골드버거는 “그건 호텔방에서 간단히 제조할 수 있는 독극물이 아니며, 화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며, 신경가스나 피마자씨에서 추출된 리신, 또는 강력한 아편 유사약품이 사용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살자를 뺀) 다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이런 식의 암살을 위해서는 아주 정교하게 제조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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