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한겨레 사설] ‘북한 소행’ 확연해진 김정남 피살 사건 |
말레이시아 경찰이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사건 뒤 첫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에 연루된 남성들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밝혔다. 말레이 경찰은 현재까지 파악된 북한 용의자는 모두 5명으로 이들 중 리정철(46)만 검거되고 나머지 4명은 사건 당일 모두 말레이시아를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말레이 경찰은 이 밖에도 북한 국적으로 보이는 3명을 사건 연루자로 추적·조사 중이다.
말레이 경찰의 이날 발표로 김정남 암살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추정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들 용의자가 북한 정보요원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국적이 북한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암살의 배후는 확연히 드러난 셈이다. 북한 남성들이 도안티흐엉과 시티 아이샤 등 여성 용의자들을 범행에 끌어들여 김정남을 살해한 뒤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 윤곽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 현지 언론들에서는 북한 용의자들이 1년여 전부터 김정남의 행적을 면밀히 살펴오다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고 보도하고 있다.
김정남 살해의 배후가 북한임은 역설적으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가 경찰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말레이시아 당국을 거칠게 비난한 데서도 엿보인다. 강 대사는 “말레이시아 측이 우리를 악의적으로 해(害)하는 데 필사적인 적대세력과 야합했을 가능성” 등의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말레이시아를 비판했다.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말레이시아와의 외교적 관계 파탄까지 거론하며 북한이 강력히 반발한 것은 이번 사건의 배후가 북한으로 드러나는 상황에 당혹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말레이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면 현안인 김정남 주검 인도 문제에 대해서도 “유가족에게 우선권이 있다”며 북한 인도 가능성에 사실상 선을 그었다. 앞으로 북한과 말레이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물론 말레이 경찰의 수사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김정남의 정확한 사인이나 독성물질의 실체도 아직은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또한 리정철이 체포되면 꼬리가 밟힐 게 뻔히 예상되는데도 북한 용의자들이 리정철을 말레이시아에 그대로 남겨둔 점 등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하다. 과연 말레이 경찰이 이런 의문점들을 모두 해소하고 김정남 피살이 북한이 저지른 조직적 암살 사건임을 명쾌히 밝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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