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5 09:19
수정 : 2017.08.25 16:03
살충제 달걀, 이것부터 바꿔야 / ②못 믿을 인증제도
살충제 달걀 60%가 친환경·해썹 인증
소비자, ‘인증달걀’ 더 비싸게 사먹지만
농가는 유통업체들에 똑같은 값에 팔아
농가 소득은 퇴보…유통업체만 배불려
전문가 “인증은 보편적 안전정책 아냐,
인증 여부 떠나 모든 먹거리 안전해야”
‘살충제 달걀’이 나온 농가 52곳 가운데 친환경인증을 받은 농가가 31곳에 이른다는 사실은 비싼 값을 주고 친환경 달걀을 사 먹은 소비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부실하게 운영돼온 인증제도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관할하는 친환경 인증으로는 항생제와 합성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고 산란닭을 키우는 무항생제 인증과 더 까다로운 유기농 방식으로 사육하는 유기축산물 인증이 있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관리인증(해썹·HACCP)은 위해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설비 등에 중점을 두는 인증제도다. 현재 친환경 인증과 해썹 인증을 받은 산란계 농가는 각각 780곳(전체의 53.6%)과 855곳(58.7%)에 이른다.
하지만 달걀 인증은 정부 위탁을 받은 민간기관으로부터 쉽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등 부실하게 운영되면서 유통업계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집계한 달걀 소매가격은 지난 10일 기준 한판(30알)에 7569원(일반·무항생제 달걀 모두 포함)이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달걀만 조사한 값은 한판에 8188원으로 600원가량 더 비싸다. 하지만 무항생제 인증 달걀이든 일반 달걀이든 산지 가격은 차이가 없다. 전북 김제의 한 친환경 인증 농장주는 “9마리까지 넣을 수 있는 케이지에도 7마리씩만 넣고, 여름에도 축사 온도가 27도 이내로 유지되도록 환기·공조설비도 값비싼 유럽산으로 들여다놨다. 하지만 친환경 인증이 있어도 유통업체는 일반 농가와 똑같은 값을 쳐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농장주는 일반 달걀과 똑같이 달걀 한 알당 174원을 받고 유통업체에 납품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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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런데도 농가들이 인증을 받는 이유는 유통업체 요구 때문이다. 특히 대형마트나 급식업체는 인증을 필수로 요구한다. 친환경 인증과 해썹 인증을 동시에 받은 농가의 경우, 정부 직불금을 지원받긴 하지만 달걀 하나당 1원 수준에 불과하고 연간 최대 2천만원을 넘지 못한다. 민간 인증기관의 부실 인증 문제 역시 이런 구조와 관련이 깊다. 경북 지역의 한 농장주는 “좋은 달걀이라고 값을 더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인증을 내주고 느슨하게 관리하는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달걀의 안전관리를 이렇게 부실한 인증제도에 의존해온 데서 문제를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증제도는 원래 프리미엄 먹거리를 차별화해서 농가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쓰여야 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기준은 일반 법규로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곽노성 전 식품안전연구원장은 “저렴한 일반 달걀이라고 해서 안전관리에 소홀해선 안 된다. 최종적인 소비자의 안전은 인증이 아닌 국가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도 “국가가 보편적으로 책임져야 할 안전을 외주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예로, 농식품부는 전체의 절반 수준인 친환경 인증 농가만을 대상으로 안전성 검사를 벌여왔다. 이번 전수검사 때도 일반 농가의 달걀은 지방자치단체에 맡겼지만 살충제 성분 검사를 할 수 있는 표준시약조차 갖추지 못한 곳들이 많아 문제가 됐다. 농식품부는 지난 5월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초과 검출된 달걀을 적발하고도 해당 농가의 인증을 취소하고 이를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는 데 그쳤다. 국민들이 즐겨 찾는 먹거리인 달걀 안전에 비상이 걸린 것인데도 인증 제도로만 문제를 처리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농가의 소득을 높이지도, 먹거리를 안전하게 관리하지도 못하는 현재의 인증 정책은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조언한다. 양성범 단국대 교수(식품자원경제학)는 “산업 진흥과 안전 규제가 분리돼야 하는 것처럼, 인증과 안전관리는 분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 전 원장은 “친환경·유기농 식품은 더 안전한 것이라기보다는, 동식물의 건강이나 복지를 고려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생산됐는지를 기준으로 가치가 부여돼야 한다. 그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들이 비용을 더 내고 구입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산란계 농장주는 “동물복지나 유기농 사육은 별도 매뉴얼이 없어서 농가 스스로 사육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정부가 몇가지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만 따질 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승 방준호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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