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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30 10:48 수정 : 2017.08.30 12:01

(왼쪽부터)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 부작용 논란을 겪고 있는 생리대 그리고 발암물질 논란을 겪은 기저귀.

살충제 달걀 파문 뒤 ‘4배’ 비싼 동물복지 달걀 구입
가계부담은 늘었지만 그래도 안심 못해 불안감 여전
국가가 관리하지 못하는 안전, 오롯이 국민 부담으로

(왼쪽부터)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 부작용 논란을 겪고 있는 생리대 그리고 발암물질 논란을 겪은 기저귀.
나는 38개월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지난 24일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달걀을 먹어야 하나 △어떤 달걀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메신저로 링크 하나가 전송됐다. ‘안전한 생리대 모여라~’ 누군가의 블로그 글이었다. 지인은 “안전 생리대를 찾는 여성들 사이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는 글”이라며 “참고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직 달걀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는데, 또다른 문제가 터졌다.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 15일 살충제 달걀 문제가 불거진 첫 날. 농장 두 곳의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달걀 껍질에 찍힌 난각기호 ‘08마리·08LSH’를 되뇌이며 귀가했다. 냉장고 문을 열자 남은 달걀 두 알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다 뭉개져버린 잉크. 난각기호를 확인할 수 없었다. 찜찜했지만 어차피 먹은 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충제 달걀 파문이 그토록 커질 줄 몰랐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 전수조사 결과 52곳의 농장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살충제 농가’ 52곳 중 2곳, 새 난각코드 붙이고 달걀 유통)

계란후라이, 달걀찜, 계란장조림, 계란말이 등 사실 달걀만큼 간편한 반찬도 없다. 아이의 먹거리와 직결된 문제라 우선 달걀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동안 아이 음식 재료는 웬만하면 유기농 식품으로 구입하려 애썼다. 그러나 유기농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 번거롭다보니 가까운 마트에서 파는 ‘무항생제 인증’ 제품으로 대신했다. 인증에 대한 믿음은 오래지 않아 배신으로 바뀌었다. 친환경 인증은 ‘안전’이 아닌 ‘상술’에 불과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살충제 달걀’ 농장 모두 49곳…친환경농가 31곳)

■ 한 알에 800원짜리 달걀 사고도 불안

믿을 수 있는 달걀을 판매하는 곳을 수소문했다. ‘믿을 수 있는’ 곳으로 언급된 농장들은 유기농 사료, 방사형 사육환경임을 강조했다. 농가들은 대부분 회원들에게 일정 비용을 받은 뒤 일주일~한달 간격으로 달걀을 직접 배송해줬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농장은 소비자가 몰린 탓에 물량 부족으로 ‘신규 신청’이 중단되기도 했다.

일부 농장은 양계장의 모습을 24시간 볼 수 있게 소비자에게 CCTV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즉시 신청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를 통해 닭들의 모습을 24시간 공개하고 있는 농장이었다. 이 농장은 “행복한 닭이 건강한 계란을 낳는다”며 ‘대한민국 1% 계란’임을 강조했다. 한 달에 30구 24000원. 달걀 한 구에 800원이었다. 지난 27일 대형마트는 달걀 한 판(30구)을 5980원(한 구에 200원)에 판다고 밝혔다. 대형마트 달걀의 4배 가격이다. 싸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갑을 열었다. ‘안심할수만 있다면….’ 불안할수록 부모들은 더 쉽게 지갑을 연다. 하지만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비싸니 좀 낫겠지’라는 자기 위안을 얻은 뿐이다.

■ 친환경·유기농 꼬리표 붙이고 2~4배씩 비싸지는 제품들

불안에 떨며 지갑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일부 기저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월 프랑스 국립소비자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컨슈머리포트 잡지 ‘6000만의 소비자들’은 프랑스에서 유통되는 기저귀 브랜드 12종 가운데 ㅍ제품에서 다이옥신·살충제 두 가지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기저귀 유해물질 검출을 보도한 프랑스 매체 ‘6000만 소비자들’ 표지 캡쳐
ㅍ기저귀는 우수한 흡수력 등을 이유로 부모들이 선호하는 기저귀였다. 나 역시 이 기저귀를 선호했다. 문제가 불거진 날 우리집 한켠에는 ㅍ기저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천기저귀를 쓰고 싶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주 잠시 천기저귀를 썼던 기억을 떠올렸다. 직장 생활을 하며 천기저귀를 사용할 순 없었다. 유통업체들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친환경·유기농’으로 포장한 온갖 종류의 기저귀가 등장했다. 대형마트는 기저귀 코너 전면에 유기농 기저귀를 노출했고, 누리집에도 해당 제품들을 묶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며칠 간의 검색 끝에 ‘제품 개발부터 폐기까지 인간과 환경을 위해 제품을 만든다’는 30년 전통의 기저귀를 선택했다. 표백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 갈색의 디자인. 나무펄프와 옥수수, 밀로 만든 제품이라고 했다. 가격은 1장당 840원. 원래 쓰던 제품의 2배 가까운 가격이었다. 가격이 부담스러웠지만 다행히 아이는 밤에만 기저귀를 차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하루 종일 기저귀를 차는 상황이었다면? 가계부가 휘청였을 테다.

사건 한달 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ㅍ기저귀에서 다이옥신 등의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래 기저귀로 되돌리는 건 쉽지 않았다.

■ 국민들은 불안한데, 정부는 느긋하다

“전 국민이 평생에 걸쳐 하루에 2.6개씩 ‘살충제 계란’을 먹어도 위험하지 않다”-8월25일 식약처

최근 식약처의 해명은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제품 안전성 논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안일한 대처로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국민들의 불안은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커진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살충제 계란’을 몇 개까지 먹어도 되냐는 정보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는 정부의 시스템이다.

그간 정부는 안전성 의혹이 제기되면, 일단 “괜찮다. 문제없다”는 말부터 내놓았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치약이 검출됐을 때도 “살균제 성분은 극미량으로, 양치때 삼켜도 안전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이런데도 믿어야 할까요…식약처 뒷북의 역사)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살충제 달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의 질의에 가볍게 웃다(맨위)가 사과한 뒤(가운데 사진),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부는 하루 2.6개의 살충제 계란을 먹어도 된다고 설명하지만, 유해물질은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살충제 계란을 먹고, 유해물질 기저귀를 차고, 가습기살균제 치약을 썼다면?

정부를 믿지 못하면, 안전은 국민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올수록 부모는 예민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 제품은 점점 친환경·유기농으로 ‘도배’되어 가고, 그만큼 가계 부담도 늘어난다. 불안과 불신이 국민 가계를 좀 먹는 셈이다.

‘딸깍!’ 지인에게 받은 안전 생리대 링크를 열었다. 유기농이라는 수식어로 포장된 일회용 생리대 10여개가 눈에 들어왔다. 12개 6300원(1개당 525원), 18개 7900원(1개당 440원), 10개 5700원(1개당 570원)…국내 생리대 가격(140~200원)보다 2~3배 비싸다.

계란, 기저귀와 달리 이번에는 쉽게 장바구니에 담을 수 없었다. 오늘도 이 제품을 살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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