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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12 11:33 수정 : 2018.12.16 17:57

숨진 김용균씨의 동료, 10월 산자위서 호소
“원-하청 갑을관계와 늘 ‘빨리빨리’ 채근
협력업체, 사람 죽어도 숨기는 데 급급
사고 난 자리엔 ‘징계 및 과태료’ 표지판
더이상 옆에서 죽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

우원식 “가격 싼 업체에 정비 맡겨
‘위험의 외주화’ 초래한 민영화 문제”

28년 만에 나온 ‘산업안전법’ 전면 개정안
국회 환노위서 한번도 논의 안돼

12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태안보건의료원 상례원 2층 3호실에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켄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고 김용균(24)씨의 빈소. 태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여러 상임위원회 가운데 가장 기업에 친화적인 위원회로 꼽힌다. 해마다 산자위 국정감사 때는 어느 재벌 총수가 나오는지, 나오지 않게 됐는지가 화제다. 노동자가 설 일은 별로 없다. 지난 10월18일 산자위 국정감사장에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이가 참고인으로 발언대에 섰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였다. 그를 부른 이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민주당에서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약자’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해온 그였다. 이태성 간사 뒤로는 각 발전사 사장 등 에너지 공기업 간부들이 도열해 앉아 있었다.

우원식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님. 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일하시죠?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인데, 어떤 업무를 하는지. 정규직 전환에 운전하는 분들은 정규직 전환하는데, 정비 맡으신 분들은 민간 위탁으로 대상이 안 되고 있는데요. 운전과 정비가 어떻게 다른가요?

이태성

“저희처럼 발전소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한전에서 함께 일해왔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민영화 정책에 따라 민간으로 개방이 됐습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저희 업무는 석탄을 공급하는 업무인데요.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핵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운전과 정비는 떼어낼 수 없는 상충 관계입니다. 발전소의 모든 기기를 점검하고, 저희는 정비하고 있습니다.”

우원식

“운전, 정비가 하나로 연결된 것이죠?”

이태성

“네, 그렇습니다.”

우 의원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담당 간부인 박성택 당시 에너지산업정책관에게 질의했다.

우원식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 발전 설비는 발전사 소유고요. 정비 업무는 발전소 업무가 아닌가요?”

박성택

“발전소 업무의 일환입니다.”

우원식

“미국, 호주,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설비 안전성을 위해 발전 회사가 자체 정비를 하는 게 보편적인데요. 우리나라도 한전의 자회사로 정비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을 만든 게 발전 설비의 안전성, 신뢰성 확보 위해서죠?”

박성택

“나라마다 회사마다 양태는 다릅니다.”

우원식

“근데 이거를 2013년부터 민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비 시장을 민간에게 개방한 이유 뭐죠?”

박성택

“정비 시장의 민간 기업 육성은 20년 된 얘기인데 당시 케이피에스(KPS)가 독점으로 하던 걸, 파업 사태가 있었고…. 그 차원에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필요 있다는 측면에서 시작됐습니다.”

우원식

“경쟁을 위한 효율성,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였죠?”

박성택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우 의원은 화면에 자료를 띄우더니, 연설에 가까운 발언을 시작했다.

“이렇게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자면서 민영화를 했는데 2011년에 발전설비산업 경쟁력 강화 용역이 있었는데요. 내용을 보니까 참가 자격을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2013년에 (실제) 할 때는 굉장히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예컨대 800㎿급 이상의 물량을 할 때는 500㎿급 설치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당진화력 9·10호기 할 때는 200㎿로 바꾸고 태안 9·10호기는 아예 빼버렸어요. 그리고 시공 경험을 A·B급으로 분리했는데 실제로는 A급 없애버리기도 했고요. A·B급을 나눠서 심사하기로 가이드라인 정한 걸 합해서 A·B급을 합산해 버리면서 A급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우 의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공동계약의 경우 구성원별로 각각 평가해서 지분율 곱하기로 가이드라인 해놓고 당진 7·8호기는 지분율 가중치를 없애는 등 기준을 완화해버렸어요. 적격심사 기준을 확 낮췄습니다. 그런 결과 발전 5사에 모든 민간 회사가 들어올 때 적격 비율을 다 확보하게 됐고요. 만점 비율이 80%입니다. 실력 평가는 없애고 가격 경쟁력만 남았어요. 이러다 보니 싼 회사가 들어왔고요. 국제 경쟁력과 전혀 관계 없이 그야말로 싼 회사, 싼 가격으로 경쟁하는 이 민영화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위험의 외주화입니다.”

우 의원은 하청업체 산업재해 현황을 표로 만들어 띄웠다.

“남동발전 59건 재해 중 협력사가 89.8%고요. 남부발전은 147건 중 협력사 147건 100%입니다. 발전 5사 5년간 위험의 외주화로 산재보험료를 112억원 감면했어요. 이게 무슨 민영화입니까? 발전사의 일을 그 회사 직원이 해야 하는데 외주화하고 싼값에 하고 국제 경쟁력 강화한다더니 외국 나간 거 하나도 없고 실력이 아니라 싸게 들어온 회사에 주고…. 이게 무슨 민영화입니까? 국민에게 생명과 안전, 전기라는 소중한 것들을 위해, 국민 복리를 위해 이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이런 민영화 하면 안 됩니다.”

우 의원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이번 질의에 할애된 시간은 17분가량이었다. 우 의원은 이태성 간사에게 “비정규직 문제도 그런 일환으로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회사를 다니면서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의 노동의 상태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이태성 간사가 입을 열었다.

“노동자는 그대로입니다. (반면) 용역업체는 3년에 한번씩 바뀝니다. 그것이 진짜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업체가 인수했다면 저희도 올바르게 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년간 그런 구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험의 외주화입니다. 대한민국은 늘 ‘빨리빨리’ 주의, 원-하청 간의 갑을 구조 속에서 저희는 업무 지시를 발전소에서 직접 받습니다. 정비를 하면서 일도 때론 같이 합니다. 용역계약 기준에 안전사고 발생하면 감점을 줍니다. 그렇기에 협력업체는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죽어나가도 숨기는 구조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동료를 하나 잃었습니다. 점심 시간에 무리하게 작업하다가 머리가 파열돼서… 수원에 응급센터가 있는데도 협력센터 간부의 차를 타고 나가다가 1시간 만에 숨졌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슬펐습니다. 더 슬픈 것은 그가 죽은 자리에, 이런 표시판이 세워졌습니다.

‘원인: 안전수칙 미준수, 조치 결과: 사건 조사 후 징계 및 과태료.’

저는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간사는 울먹였다. 공기업 간부들과 국회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발언을 계속 들었다.

“사람이 죽어도 잘잘못을 가리고, 징계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대한민국의 공공기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5600명의 노동자가 매일 죽음을 걱정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에너지정책과 문재인의 국정 1호 과제인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충돌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존경하는 국회의원들과 정부, 발전사, 저희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제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더 이상 옆에서 죽는 모습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습니다. 더 이상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제가 국회의원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간사는 두달 뒤인 지난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오늘 동료를 잃었다”며 다시 울먹였다. 이날 새벽 3시20분께 태안화력 9·10호기 현장에서 기계에 끼여 숨진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24)씨의 죽음을 전했다. 2016년 ‘구의역 사고’ 뒤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은 없었고, 정부가 지난달 1일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려 28년 만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한번도 논의되지 못했다고 국회 관계자는 전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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