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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30 12:15 수정 : 2018.12.30 14:55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 앞에서 법안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김씨의 회사 동료를 껴안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_산안법 개정 취재기록
‘구의역 김군 법안’ 논의 실종 상태
김용균씨 사망 뒤에야 산안법 논의
어머니는 의자 거부하며 입법 촉구
야당 반발·반대로 ‘롤러코스터 심사’
건설협회장 출신 박덕흠, 공개 반발
“청년” 강조하던 신보라, 출장 떠나
임이자 “입술 부르텄다”…극적 합의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7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 앞에서 법안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김씨의 회사 동료를 껴안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를 취재한 지 3년 가량 됐다. 입법 과정을 여럿 지켜봤지만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처럼 짧은 시간 롤러코스터를 탔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원회 위원들과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등 유족, 재계 및 노동계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은 법안 심사가 본격화한 지난 19일부터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27일까지 서로 뒤엉켜 시간을 보냈다. 취재 수첩 속 내용들을 풀어봤다.

■ 환노위 회의록에서도 실종된 ‘구의역 김군’ 법안 논의

12월11일 김용균씨의 참혹한 죽음이 있었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다. 많이 보던 구조였다. 바로 2016년 5월에 발생했던 서울 구의역 김군(당시 19살) 사망 사고가 떠올랐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대책 법안’들이 많이 발의돼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패키지 7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법들이 어떻게 됐는지 이후 상황을 짚은 기사는 ‘논의에 진전이 없다’는 2017년 5월 <연합뉴스> 보도가 유일했다. ‘자유한국당이 엄청 반대를 했겠구나’ 추측하면서 환노위 회의록을 뒤져봤는데, 이상했다. 발의 직후 입법을 촉구하는 의원들 발언은 있었는데 본격적인 논의는 회의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찌된 일일까.

다음날인 12월12일 여당 의원 5명과 야당 의원 한 명,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보좌진 2명에게 전화를 돌려봤다. 설명을 종합해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이었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최근엔 탄력근로제 확대까지 노동계에 뜨거운 이슈가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산업안전 이슈는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설명이었다. 20대 국회엔 홍영표·김영주·한정애·이용득(이상 민주당), 김성태·임이자·문진국(이상 자유한국당) 등 노조 출신 의원들이 적잖았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소속인 이용득 의원에게 물어보니 “이건 뭐 여야 따질 것 없고 남 탓 할 것 없다”, “우리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관련기사 : 구의역 사고 2년여…‘위험 외주화 방지법’ 손도 안 댄 국회)

발의돼있는 법안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 11월1일 국회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대표적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들어가 이 법 내용을 살펴봤는데 이것도 좀 이상했다.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을 댓글 형식으로 쓸 수 있는데 174건이 달려있었고 대부분 ‘반대’ 의견이었다. 지난 2월 정부 입법예고 뒤 11월에야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는데 그 사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에선 의견서 제출, 토론회 개최, 설문조사 발표 등을 통해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화력을 쏟아부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정부의 입법예고 당시엔 ‘사망사고시 사업주에 대해 1년 이상 징역’이라는 ‘하한형’이 추가돼 있었는데 국회에 제출할 땐 이 조항이 빠졌다. 고용노동부 쪽에 문의하니 부처간 이견 때문에 후퇴한 것이라고 했다. 담당 과장은 “자세한 설명을 하긴 어렵다”면서도 “우리가 하한형 조항을 마지막까지 지키려 노력했던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위험의 외주화’ 방지 법안이 국회에서 ‘주변화’되는 과정)

기사가 나간 뒤 당시 법안 수정 과정을 잘 아는 국회 관계자를 만나게 됐다. 그는 “그때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가 부딪혔는데, 당시 삼성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이슈까지 얽히면서 재계와 산자부 목소리가 커지며 결국 노동부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 김동철 넘으니 ‘이장우 산’…우원식 “입장문 썼지만 안올리겠다”

국회의 책임 방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환노위는 19일 서둘러 고용노동소위를 열었다. 27일 본회의를 앞두고 8일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관련기사 : 위험의 외주화 막자” 국회는 매우 분주했다, 오랜만에) 소위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소속 임이자 의원이었다. 시작부터 책임 공방이 일었다. 임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정부가 만들고 있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뒤 설명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느냐”고 따졌다. 이에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정부는 설명하길 바랐는데 의원들이 안 받은 것인지 보좌진이 막은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소위는 21일 오전에 다시 열렸다. 법안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에 또다시 공방이 시작됐다. 환노위 바른미래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이 “우원식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법 처리가 안 된 것이 야당 때문이라고 한 데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논의할 수 없다”고 반발한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탄력근로제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이건(산업안전보건법) 논의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다른 법과 연계를 시켜서 이 법을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는 전날 우 의원의 라디오 인터뷰를 문제삼은 것이다. (▶관련기사 : “우원식 사과 안하면 법 또 표류” ‘위험의 외주화’ 방지 논의에 야당 ‘엄포’) 이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신 사과하면서 회의는 오후에 다시 열릴 수 있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이었던 우 의원은 이날 김용균씨가 숨진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을 방문하고 있었다. 우 의원에게 전화해 입장을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위 갈등 소식에 놀라 우 의원이 김동철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통화하다보니 김 의원이 일부 사실 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고 ‘다시 확인하고 연락주겠다’며 끊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다시 소위 회의장에 들어가며 “우원식 의원은 변명을 하더라”고 말했다. 우 의원은 그간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입장문을 작성했지만 김 의원을 또 자극할까봐 올리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우 의원은 “27일 본회의에서 법을 꼭 통과시켜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김동철 산’을 넘었는데 더 큰 산이 나타났다. 재개된 소위 회의에서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안 자체를 아예 반대하고 나섰다. “과잉 입법”, “엉터리 법안”이라는 그의 발언에서 법안 통과가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관련기사 : 한국당 이장우 “나라 망하게 생겼다”…‘위험 외주화 방지법’ 심의에 몽니)

국회 환경노동위 법안심사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귀대기'를 하고 있는 재계 협회 관계자들. 송경화 기자
■ 눈에 띄었던 ‘대한전문건설협회’, 박덕흠 등장 화룡점정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 회의는 통상 머리발언만 공개한 뒤 비공개로 전환된다. 19일에 이어 21일에도 기자들은 회의장 밖 복도에 앉아 소위 논의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복도가 조용한 가운데 몇몇 중년 남성들이 소위 회의장인 국회 본청 621호 문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국회 기자나 보좌진은 대개 낯이 익지만, 이들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국회 방문증을 차고 있었는데, 한 명은 목에 별도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KOSCA’, ‘대한전문건설협회’였다. 나에게 와서 “우원식 의원이 혹시 왔다 갔냐”고 ‘취재’를 하는가 하면, ‘귀대기’(회의장 문틈에 귀를 대고 논의 내용 몰래 듣기)를 하기 시작했다. 협회 관계자들은 소위 회의장에서 나온 의원들이 기자들에게 ‘백브리핑’(정식 브리핑에 추가로 진행되는 구체적 배경설명)을 할 때도 기자들 사이에 섞여 녹음 기능을 켠 휴대전화를 들이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기사로 썼고 현장 사진까지 첨부했다. (▶관련기사 : ‘김용균법’ 심사 비공개되자 재계 협회선 ‘귀대기’를 시작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24일) 또 소위 회의가 잡혀있었다. 정당한 보도 활동이었지만 ‘귀대기 뒷모습’ 사진을 기사에 첨부한 점을 혹시 문제삼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항의하면 반박하면 되겠지만 계속 집중이 필요한 현장 취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날 오전 협회 직원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저녁에서야 다시 나타났지만 더 이상 ‘귀대기’를 하진 않았다.

‘건설협회’는 의원들과의 대화에서도 계속 등장했다. 주요 쟁점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26일,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건설협회에서 (반대 의견을) 얘기해서 확인한 내용을 다시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환노위 최종 의결이 있었던 27일, 국회 국토교통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박덕흠 의원이 환노위 회의장을 찾아 이견을 제시하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박 의원의 정확한 이력을 잘 모르고 있던 터라 검색을 해봤더니 익숙한 단체 이름이 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2006~2012년). 귀대기까지 해가며 직원이 ‘열일’ 하던 대한전문건설협회에서 중앙회 회장을 지냈던 것이다. 박 의원은 법안 합의가 임박하자 사업주의 의견을 직접 전달하려 환노위 소위 회의장에까지 나타난 것이다. 한정애 의원은 “이해 당사자가 저렇게 와서 이래도 되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관련기사 : 산안법 의결 임박하자 달려온 ‘건설사 대표 출신’ 박덕흠)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이 27일 국회 환경노동위 회의장을 찾은 뒤 나오고 있다. 송경화 기자
■ 의자도 거부하던 어머니…‘청년’ 신보라는 출장 떠나

24일부턴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등 유가족이 소위 회의장 앞을 찾았다. 회의는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복도에서 어머니와 기자들, 재계 관계자들,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다. 어머니는 의자를 가져다드려도 잘 앉지 않았다. 물을 드리면 입술만 적셨다. 그런 어머니 옆에서 의자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다리가 너무 아프면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 의자에 앉곤 했다.

26일엔 소위 오전 취재를 마치고 혼자 국회 1층 구내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마침 어머니 등 유족분들이 앉아계셨다. 밥을 뜨는둥 마는둥 하는 어머니에게 한 일행이 “신보라 (한국당) 의원은 청년”이라며 법안 통과에 협조할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하는 게 들렸다. 신 의원이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위원이라 저런 얘기를 하나보나 했다. 그런데 이튿날(27일) 신보라 의원은 환노위 전체회의 의결 전 국회를 떠나 김성태 전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운영위원회 위원들과 베트남 다낭에 사실상 외유성 출장을 떠나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입술 부르텄다”는 임이자…웃음소리 새어나온 뒤 ‘통과’

이번 법안 심사 과정에서 의원들은 여론을 굉장히 신경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문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24일 소위에서 여야는 이장우 의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만 고치는 개정안이 아닌 정부의 전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합의했다. 주요 쟁점에도 상당 부분 뜻을 모았다고 했다. (▶관련기사 : 엄마 국회 찾아 눈물호소한 날…산안법 개정 한발 다가선 여야) 25일 기사 발제(26일치 조간신문용)를 하루 쉬었다. 휴일이라 별도 상황 전개가 없는 가운데 전날 기사의 동어반복일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26일 조간을 보니 경제지들은 “기업하기 참 힘든 나라”라며 “산업안전보건법 폭탄”이라는 기사를 1면 등에 내보냈다. 바로 이날 오후에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선 산안법 합의에 반대 의견이 폭발하며 합의에 다다른 듯 했던 분위기가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이대로 가게 되면 대한민국 산업계 전체를 민주노총이 장악하는 결과가 된다”, “기업 경영 존립 기반이 와해된다”는 등의 반대 주장을 폈다. 자유한국당 내부 분위기를 취재해보니 환노위 합의에 대해 다른 의원들의 불만이 적잖았다. 이날 임이자 위원장은 “일부 언론들이 졸속처리라고 비난하는 쪽도 많다”며 추가 논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분위기가 이렇게 변하자 한 소위 의원은 “한국당 비판 기사를 써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27일 조간엔 <한겨레> 등 몇몇 언론이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는 1면 기사를 썼다. (▶관련기사 : 참담한 죽음 보고도…‘김용균법’ 원점 되돌린 한국당)

한국당 임이자 소위 위원장은 <한겨레> 1면 기사에 이의가 있는 듯 했다. 27일 오전 소위를 마친 뒤 엘레베이터를 함께 타고 내려가는데 “한겨레 기자님, 잘 쓰라”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임 의원은 “한국당이 뭘 안 했다고 그러냐. 얼마나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근로자들 안전·보건 조처 강화하는 것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한국당이 반대한다고 그러냐”고 했다. ‘당내 반대 의견이 많지 않냐’며 전날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 의장의 공개 발언을 언급했더니 임 의원은 “제가 참 많이 힘들다”고만 했다.

한국노총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비례대표인 임 의원은 이번 법안 처리 과정에서 실제로 애를 많이 쓰는 모습을 보였다. 전날 임 의원은 환노위 소위 회의장과 자유한국당 의총장을 수차례 오가며 의견 조율을 시도했다. 임 의원은 “입술이 다 부르텄다”고 했다.

27일 오후 법안 합의를 도출한 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인사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소속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왼쪽).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본회의가 잡힌 27일 오후 여야 교섭단체 3당은 민주당 한정애, 자유한국당 임이자, 바른미래당 김동철 등 환노위 간사와 각당 정책위의장이 결합한 ‘6인’ 회의를 열었다. 평소 긴장감으로 팽팽하던 소위 회의 때와 달리 이날 오후 회의에선 문 밖으로 웃음소리가 두어번 흘러나왔다. ‘뭔가 잘 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하며 회의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옆에는 여전히 김용균씨 어머니가 서 있었다. 결국 여야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이날 최종적으로 통과시켰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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