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19 13:43
수정 : 2019.08.19 21:50
|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특조위) 김지형 위원장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사망사고 진상조사 결과 발표
“원청 사망땐 12, 하청은 4 곱해 감점”
발전산업 민영화·외주화 철회 권고
|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특조위) 김지형 위원장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당시 24살)씨에게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한 헌법 제11조는 한낱 말일 뿐이었다. 김씨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출범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원청과 하청이라는 ‘신분’ 차별 때문에 김씨가 숨졌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매겨지는 점수도 달랐다며,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해 발전산업의 민영화·외주화를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지형 특조위원장은 “석탄화력발전 사업의 원청·하청 모두 안전비용 지출이나 안전시스템 구축에는 무관심했다”며 “위험은 외주화됐고,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됐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출범한 특조위는 현장·설문·인터뷰 등을 통해 넉달 동안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하청업체만 배 불린 민영화·외주화
발전산업의 민영화·외주화는 2001년 전력사업 구조개편 정책에 따른 한국전력공사(한전) 분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결과, 한전의 발전사업은 서부발전과 남동발전, 남부발전과 동서발전, 중부발전 등 5개 화력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분사됐다. 이후 발전사들은 기술경쟁을 도입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업부문을 민간에 개방해 발전 정비사업과 연료·환경설비 운전사업이 외주화됐다.
특조위는 기술경쟁은 실패했으며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저임금·불안정 고용만 촉발됐다며 민영화를 실패로 진단했다. 특조위는 “발전사 경쟁 과정에서 관리비가 늘었고, 전기생산 직접인력은 감소했다”며 “설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중요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숙련노동자 확보를 위해 발전회사는 하청업체에 일정 수준의 노무비를 책정했지만, 그 비용은 온전히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5개 발전사가 협력업체에 지급한 노무비와 협력업체가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지급한 인건비를 비교하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이 지급한 노무비의 57~61%만을 인건비로 받았다고 특조위는 설명했다.
대신 하청업체들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2017~2018년 하청업체들의 영업이익률(9.1~19.5%)은 2018년 상장사들 평균 영업이익률(5.98%)보다 2~3배 높았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관리·감독은 없었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원청은 용역 결과 보고서에 따라 노무비를 지급할 뿐, 노동자에게 얼마를 주는지는 경영권이라 (원청이) 침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5개 발전사에서 일하는 협력사 노동자 6220명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53~77%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서부발전의 하청업체 관계자는 “인건비 지급률 40~50%는 말도 안 된다. 노무비의 100%를 지급하고 있다”며 “조사가 잘못된 것 같다”고 반박했다. 특조위는 “(공기업인 발전사들과 달리 사기업인) 협력업체들이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인건비 내역 지출을 거부해 구체적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건강보험료 납부 실적을 토대로 하청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역산해 지급액을 추산했다”고 설명했다.
|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 보고장에 어머니 김미숙 씨가 보고서를 들고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청노동자 잦은 사고에 죽음도 차별
민영화·외주화는 노동자들의 안전도 위협했다. 특조위는 발전 5사와 하청업체의 최근 5년간 재해율을 분석한 결과, 사고의 93%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특히 사망사고 21건은 모두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특조위는 원청·하청 고용형태가 사고에 끼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하청업체 노동자가 1명 늘어날 때마다 연간 작업 관련 사고가 0.75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죽음값’도 차별을 받았다.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발전 5개사 경영실적 평가지표에 반영됐는데, 원청노동자가 숨질 경우 계수 12를 곱해 평가점수가 깎였지만, 하청노동자의 계수는 4에 불과했다. 특조위 간사였던 권영국 변호사는 “원청·하청 노동자 죽음을 차별하는 게 수치로도 나타난 것”이라며 “원청·하청 노동자에 대한 처우 차별은 결국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불법파견 시비를 피하기 위한 원청의 불명확한 지시가 사고 위험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특조위는 “화력발전소 운영은 24시간 연속 업무로 원청이 하청업체에 업무지시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불법파견 시비를 피하기 위해 원청은 불명확하고 소극적인 지시를 할 수밖에 없고 사고의 위험은 높아졌다”고 비판했다.
특조위, 민영화·외주화 철회 권고
특조위는 발전사에 정비·운영 업무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철회하고, 정부와 국회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또 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발표 현장을 찾은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특조위 조사 결과에 대해 “그동안 회사에서 우리 아들 잘못으로 몰아갔는데 증거가 없어 걱정과 억울함이 컸다. 증거가 명백하게 밝혀진 것에 대해 안도감이 든다”며 “용균아, 앞으로 안전하지 않은 사회를 더 밝게 만들 것이다.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권지담 선담은 기자
gonji@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