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2 18:09
수정 : 2019.12.03 02:38
김진 ㅣ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지난 9월 언론 보도를 접했을 때만 해도 그저 “또 공무원들이 일하면서 실수한 게 있었나 보다. 좋은 일인데 꼼꼼하고 무리 없이 했으면 좀 좋아” 하며 안일하게 받아들였다. 노동계에서 강력하게 반발했다는 기사도 봤지만, 서울시 공기업에 속한 노조원 문책에 대한 반발이겠거니 생각했다. 서울시 비정규직 전환 과정에 관한 감사원 감사 결과 이야기다.
이렇게 무심한 사람들이 대충 생각하고 있는 사이, 언론에서는 “부정채용 무더기 적발”이라거나 “정규직 전환자 중 192명이 친인척”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이번에 서울시가 감사원 결과에 대해 재심의를 청구하고 그 대리인 중의 한명이 되면서 처음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를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고서는 절차에 관한 지적이나 일을 공정히 처리하지 못한 공무원 문책을 넘어 근본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다.
구체적 직무수행에 대한 지적은 다툼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여기서 왈가왈부할 것이 못 된다. 하지만 “무기계약직 일반직 전환 정책 수립 부적정”이라는 지적은 다르다. 바로 “왜 무기계약직을 그대로 일반직으로 전환하는가”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직원은 능력의 실증을 거쳐 임용하도록 되어 있고, 무기계약직과 일반직에 대해 수행 업무의 내용이나 난이도, 승진·보직 경로 등을 구분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채용시 절차 및 시험 난이도 등도 다르게 운영하고 있으므로, 일반직에 적합한 능력의 실증을 거쳐 전환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지적의 요지다.
사실 이런 지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노력과 능력으로 힘들게 정규직이 된 사람과 그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쉽게 비정규직이 된 사람을 어떻게 똑같이 대우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모두 무조건 전환하는 것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실질적 평등의 원칙에 반하고 오히려 정규직을 역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과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리가 ‘공정’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대책에 의문을 제기해온 것은 오래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룰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무기계약직’ 덕분이었다. “시험도 안 본 사람을 공채 출신과 같이 취급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무기계약직이라는 별도의 직렬(직군)을 만드는 거야”라고 답하면서 말이다.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이거나 나아가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좋은 일자리는 드물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어렵게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똑같이 처우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사용자들은 ‘일반직(정규직)이 아닌 사람들’을 여전히 차별할 수 있었고, 일반직(정규직)들은 힘겹게 얻은 자리를 지켰으며, 나 같은 법률가들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무기계약직을 따로 만드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라거나 “일단 고용안정을 확보하고 근로조건은 점차적으로 개선하면 된다”는 말로 뒷받침했다. 하지만 얼마나 부끄러운 이름인가. 어떤 사람들을 그냥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부르다니. 그런 식이라면 일반직(정규직)도 ‘무기계약직’인데.
서울시가 2단계 정규직화를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일은 바로 이 ‘무기계약직’을 뛰어넘으려는 것이었다. 그동안 쉽게 하지 못해 낯설어 보이겠지만, 법적으로 아무리 허용되더라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무기계약직’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무리 짓는 대신, ‘보통’이라는 뜻의 ‘일반직’의 카테고리에 넣고 각자가 하는 일과 경력과 실제 실력에 따라 각자의 이름을 부르겠다는. 모든 사용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더라도 부적정하다고 할 일은 아니다.
감사원이 말하는 “일반직에 적합한 능력”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차별을 위해 만든 인사규정이나 입사시험이나 ‘일반직’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다. 무엇보다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 아닌 이름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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