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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4 19:27 수정 : 2019.06.14 23:22

지난 11일 오후(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일어난 충돌사고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사고 13일 만에 인양돼 바지선에 놓이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

지난 11일 오후(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일어난 충돌사고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사고 13일 만에 인양돼 바지선에 놓이고 있다. 부다페스트/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의 실종자 수색 작업이 벌어지는 이곳의 출입을 헝가리 경찰은 이른 아침부터 통제했습니다. 머르기트 다리 위쪽 사람들이 다니는 길까지 모두 막혀 땅과 강에는 긴장감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갔던 잠수부들이 잠시 물 위로 올라온 오전 11시께 강의 서쪽에서 대형 유람선이 다리 밑을 지나갑니다. 그 유람선 갑판 위 관광객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번쩍이며 사고 현장을 찍었습니다. 한 대형 유람선이 일으킨 사고를 다른 대형 유람선 관광객들이 촬영하는 모습,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뉴브강 유람선 사고를 취재한 남은주입니다. 지난달 29일 밤 9시5분 머르기트 다리 남쪽에서 유람선 두 대가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현장을 취재하러 헝가리로 갔습니다. 사고 직후 헝가리 정부는 머르기트 다리 주변 배들의 통행을 제한했지만 대형 유람선들은 여러차례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한국 수색구조대원들이 처음으로 배에서 한국인 실종자 주검을 수습했던 3일 오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뉴브강은 국제항행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제수로라서 외국에서 온 대형 유람선의 출입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르기트 다리 근처는 강폭이 400m 남짓한데 헝가리 해운협회 자료에 따르면 보통 선박 15대가 동시에 이곳을 지난다고 합니다. 극심한 혼잡 지역인 셈이죠. 참사가 발생한 뒤 현장에서 만난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다뉴브강을 관리할 권한이 우리(헝가리)에게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헝가리가 다뉴브강 국제항행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통 관리도 방치했다는 비판이 높습니다. 2013년 부다페스트시가 당시 부시장 벌라주 세네체이 책임하에 조사·발간한 ‘다뉴브강 부다페스트 지역 연구계획안’에는 이번에 사고가 난 머르기트 다리 주변은 “해상안전의 관점에서 대형 크루즈선 정박 금지구역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다뉴브강 물줄기는 머르기트 다리와 붙어 있는 머르기트섬과 만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가뜩이나 좁은 이곳에 이미 다리 앞뒤로 선착장이 2곳 설치돼 있기 때문에 배가 속도를 바꾸거나 잠시 서 있으면 충돌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부다페스트시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연구가 있은 지 6년이 되도록 시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고가 난 머르기트 다리 근처는 유람선 관광객들이 야경을 찍을 수 있도록 배들이 잠시 멈춰서는 단골 정박지가 됐습니다. 사고가 난 날도 왜 두 배가 다리 밑에서 갑자기 진로를 틀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의사당이 보이는 자리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리 밑을 지나기 위해 오른쪽으로 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합니다.

침몰된 선박인 ‘허블레아니호’가 소속된 회사 파노라마덱의 한 직원에게 배들이 이곳에서 자주 진로를 바꾸는지 물었습니다. 이 직원은 “유턴은 금지돼 있지만 대형 선박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작은 배는 물살에 휘말려서 옆으로 길을 틀거나 부딪히게 된다. 문제는 진로 변경이 아니라 속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뉴브강에 최저 속도와 최고 속도 제한 등을 규정하는 교통규칙이 제대로 없는 게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지난 13일 사고를 일으킨 스위스 국적의 대형 유람선 ‘바이킹 시긴호’ 선장은 배를 침몰시키고도 아무런 구호 조처 없이 그대로 운항해 뺑소니 혐의를 받으면서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가 변명한 ‘상황’은 교통규칙이 정립돼 있지 않다는 것도 포함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가 몰랐거나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도 있습니다. 사고 직후 스위스 바젤 지역의 신문 <바젤>은 “크루즈 여행이 호황을 누리면서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 저임금을 받는) 숙련된 운송 직원을 찾는 것이 몹시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몇달 전에도 네덜란드에서 사고를 일으켰던 이 선장이 왜 다시 배를 운전해 대형 참사를 일으키게 됐는지 사고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남은주 전국2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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