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2 20:56
수정 : 2019.07.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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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둘째) 등 국무위원들이 2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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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본 ‘일본의 보복’ 의도
안보 우방 27개국서 한국 제외 추진
“일, 안보 빌미로 부품수출 제한
한국 무역 위상 바꾸려는 전략
한국성장 억제·남북 접근 견제 노려”
한일관계 단기간 출구 모색 어려워
‘WTO 제소-외교 해법’ 투트랙 대응
일 전략 넘을 근본 해법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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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둘째) 등 국무위원들이 2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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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경제보복으로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한-일 관계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갈등의 터널 속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기업들과 협력해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고, 외교적으로는 일본에 경제보복 철회를 촉구하면서 지난달 제안한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계속 촉구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 고민이 깊다.
우선 단기간에 출구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에서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 총리가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쪽은 1일 경제보복 조처를 발표하기 앞서 한국 쪽에 외교 경로를 통한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는데, 외무성을 제쳐두고 아베 총리 관저에서 강경론을 지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세계무역기구 제소 등을 통한 단호한 대응과 함께 외교적 해법을 계속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아베 총리가 보수층 결집용으로 강한 카드를 꺼냈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갈등의 장기화에 대한 부담도 있다.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한국에 부품을 수출하던 기업들을 중심으로 해법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 제소 등으로 적극 대응하면서도 물밑 교섭은 계속해 외교적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국 정부가 이미 내놓은 한·일 기금 제안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에 관련 협상 개시를 요구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과도 소통을 강화해 현금화 조처를 잠시 유예하는 방안을 찾고, 한·일 기업들의 참여를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강경파의 ‘한국 배제’ 의도가 깔려 있다며,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조치는 일본의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 가운데 대량파괴무기 등에 사용될 우려 등 국제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에 부품 수출을 제한하는 조항을 근거로 하고 있다. 국제안보 우려가 없어 별도의 승인 없이 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27개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도록 통달(훈령)과 정령(대통령령)을 개정하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무역 분야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국에 대한 부품 수출에 안보 우려가 있다는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법을 개정해 일본의 무역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조치”라며 “일본 강경파들이 강제징용에 대한 일시적 보복 차원을 넘어 국제분업질서에서 한국을 배제해 한국의 경제성장을 억제하고, 안보 우려를 빌미로 남북한 접근을 견제하려는 장기적 전략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한-일 관계에서도 국제분업질서의 큰 흐름이 바뀌는 상황에 우리 경제가 어떻게 대응하고 혁신에 나설지 근본적 전략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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