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2 12:51
수정 : 2019.07.22 20:35
[현장에서]
일본 수출규제 사태를 맞아 ‘탈일본’이 화두다. 정부는 핵심 기술·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에스케이(SK) 등 반도체업계도 불화수소를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조달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최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 간의 논란이 보여주듯 ‘탈일본’은 쉽지 않은 과제다. 박 장관은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대기업이 그동안 중소기업 제품 구매를 외면하다가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 회장은 중소기업 제품의 낮은 품질 등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탈일본’에 성공하려면 대기업의 인식전환과 중소기업의 품질 향상이 모두 이뤄져야 한다. 박 장관과 최 회장 모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현실문제를 정확히 지적했다. 하지만 미래문제를 풀기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기반성과 각오는 빼먹었다.
대기업은 단기 이윤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에 힘써야 한다. 중소기업은 이른 시일 안에 대기업이 안심하고 쓸 수 있도록 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이 소재·부품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비결로는 ‘기업 간 협력’이 꼽힌다. 우리 대기업도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장기적인 구매를 통해 정당한 수익을 보장해야 하며 △부품·소재 개발에 공동 노력하고 △과감한 테스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우수한 부품·소재 개발로 보답하는 ‘윈윈’이 필요하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대기업이 그동안 기술 우위, 안정적 품질 등의 이점 때문에 일본에 의존했지만 향후 공급 불안정 문제가 지속적으로 재연될 수 있어 생각을 바꿀 것”이라며 인식전환을 기대했다.
궁극적으로는 재벌 중심 산업생태계의 개선이 요구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22일 “중소기업이 소재·부품·장비를 개발하면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는데, 어렵사리 납품이 성사돼도 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의 불공정거래 관행 속에서 평균 5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수익이 안나니 연구개발 여력이 없고, 인재 확보도 어렵다. 기술력 있는 소수의 중소기업은 처음부터 해외기업하고만 거래하려고 한다. 반면 재벌은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분야는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국내 개발이 가능한 분야는 계열사를 통해 직접 공급받는 ‘손쉬운 전략’을 써왔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도 도마 위에 오른다.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중소기업 육성에 수십조~수백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한방’에 급소를 찔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정부의 재벌 중심 성장정책에서 탈피를 선언했다. 중소기업에 정당한 인센티브를 보장해 혁신이 살아 숨 쉬도록 하는 혁신성장을 표방했다. 하지만 임기 절반도 안 돼 인내심을 잃고 재벌 중심 투자·고용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항구 박사는 “이번 사태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치부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