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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8 18:03 수정 : 2019.10.29 02:34

일본 현대 미술가 아이다 마코토가 25일 저녁 서울 이태원 다세대 아트 싸롱에서 열린 한일 예술가 퍼포먼스 무대에 나와 강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그는 애초 계획했던 욱일기 퍼포먼스가 주최 쪽의 거절로 무산된 경위와 퍼포먼스 구상 배경 등을 설명한 뒤 빌리 조엘의 노래 ‘어니스티’를 부르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14년만에 다시 만난 작가 12명
내달 24일까지 이태원 문화공간에
색다른 콘텐츠와 연대의식 선보여

일 후원재단 압박받은 아이다 마코토
전시 실패 경위 설명하는 자리 가져
“소녀상 전시 금지 사태로 얻은 영감
평화 알려야 할 예술가 사명 일깨워”

일본 현대 미술가 아이다 마코토가 25일 저녁 서울 이태원 다세대 아트 싸롱에서 열린 한일 예술가 퍼포먼스 무대에 나와 강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그는 애초 계획했던 욱일기 퍼포먼스가 주최 쪽의 거절로 무산된 경위와 퍼포먼스 구상 배경 등을 설명한 뒤 빌리 조엘의 노래 ‘어니스티’를 부르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가 일본에서 날아와 서울에서 벌이려던 퍼포먼스 제목은 ‘평화의 아저씨’였다.

시뻘건 태양 주위로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욱일기’. 이 깃발을 전시장 벽에 붙여놓고 한국 관객이 파란 매직펜으로 욱일기에서 연상한 어떤 단어나 메시지를 한글로 적을 때마다 작가가 관객을 맞은편 의자에 앉히고 글 쓴 내용에 대해 대화한다. 욱일기 표면에 매직펜 글씨가 꽉 찰 때까지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퍼포먼스는 무산됐다. 일본 정부와 연관된 외부 압박이 작용한 것이다.

“이번에 저는 퍼포먼스 안 합니다. 아니,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신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25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자리한 신생 문화복합공간 ‘다세대 아트 싸롱’ 지하실 퍼포먼스 무대에 일본 작가 아이다 마코토(54)가 나왔다. 일본 성인만화의 전형적인 소녀 이미지를 기형적이거나 괴물 같은 몰골로 변형시키는 작품을 통해 일본 현대사회의 병폐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작업으로 한일 미술계에 널리 알려진 예술인이다.

아이다 마코토가 애초 구상했던 욱일기 퍼포먼스의 그림. 욱일기 위에 한국 관객들이 자신의 감상과 생각을 한글로 써넣는 광경을 떠올리며 그렸다. 이날 작가의 강의 퍼포먼스에 함께 공개됐다.

마코토는 전날인 24일부터 한일 50대 예술가 12명이 연속으로 벌인 <50/50> 퍼포먼스 릴레이 전시의 일부로 준비했다 좌절된 ‘퍼포먼스 실패담’을 이야기했다. <50/50>전은 2005년 한일 수교 40돌을 맞아 루프에서 열었던 <40/40>전에 이어 14년 만에 다시 열린 한일 예술가 교류전이다.

“주최 쪽인 국내 대안공간 루프 쪽이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며 거절한 뒤 퍼포먼스를 수정하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무산된 퍼포먼스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그 경위에 대해 관객에게 설명하는 게 더 좋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벽면에 투사된 원래 욱일기 퍼포먼스의 개념도와 자기가 생각하는 작가와 시민, 세계, 민족의 관계망을 정리한 도표 등은 두어달 전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의 작품 철거 파문을 떠올리게 했다.

“욱일기 퍼포먼스의 기원은 사실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한국 민중미술가의 소녀상 전시를 금지하면서 일어난 소동에 닿아 있어요. 전세계 예술가들은 민족을 떠나 사이좋은 동지지만, 한편으로 민족주의나 국가에 얽매인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화와 인간주의를 일깨워야 할 사회적 역할과 책임도 있다고 봐요. 아이치트리엔날레 사태는 그런 사명을 일깨워주었고, 같은 맥락에서 이번 퍼포먼스를 기획했습니다만….”

25일 저녁 무대에 오른 정연두 작가의 퍼포먼스 <소녀들의 대화>. 한국의 배우와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의 대학생이 나란히 앉아 인공지능 번역기를 이용해 서로의 생활과 문화, 최근 양국의 정치·경제적 갈등에 대한 생각을 묻고 대화를 나누는 얼개를 취했다. 생활·문화 부분은 번역기를 이용한 소통이 손쉬운 반면, 민감한 양국의 정치적 갈등에 관한 부분은 기기의 번역 자체가 계속 오류를 일으키거나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욱일기 퍼포먼스가 무산된 사정과 애초 구상 배경을 설명한 뒤 빌리 조엘의 노래 ‘어니스티’를 부르며 무대를 떠났다. 주최 쪽인 대안공간 루프의 기획자 서진석·양지윤씨는 “욱일기가 한국에서 워낙 민감한 정치적 소재이고, 행사를 금전적으로 후원한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정치적 표현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인 터라 보류 의견을 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예술행사 지원에 특별한 조건을 달지 않았던 일본국제교류기금 쪽이 이례적으로 이번 행사에 압박성 조건을 달았다는 점에서 퍼포먼스 무산은 뒷말을 낳았다.

이용백 작가의 빨래 퍼포먼스 장면. ‘너무 아름다운 것, 그 너머에는 추악한 것이 있다’는 명제를 화두 삼았다. 작가는 30여분간 공들여 작업복들을 빨랫비누를 푼 물에 담가 빨고, 방망이로 두들기고 줄에 널어 말렸다. 작품의 화려함 뒤에는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예술가의 숱한 고뇌와 노동이 있다는 것을 몸짓으로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최근 한일 갈등이 무색한 연대의식과 색다른 콘텐츠를 선보이며 관심을 모았다. 역시 25일 저녁 무대에 오른 정연두 작가의 퍼포먼스 <소녀들의 대화>에서는 한국의 배우와 교환학생으로 온 일본 대학생이 나란히 앉아 인공번역기를 이용해 서로의 생활문화, 최근 양국의 정치·경제적 갈등에 대한 생각을 묻고 대화를 나눴다. 생활·문화에 대해서는 원만한 통역 기능이 작동했으나, 민감한 정치적 갈등 부분은 기기 번역 자체가 계속 오류를 일으켰다. 국내 중견작가 이수경씨는 24일 일본 작가 오자와 쓰요시가 가져온 돌에 도금을 한 뒤 천으로 싸서 돌려주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이용백 작가는 빨래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의 화려함 뒤에 구질구질한 예술가의 고뇌와 노동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행사를 돌아본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는 “예술가들이 양국의 민족적·사회적 현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작가들의 퍼포먼스 영상과 흔적은 새달 24일까지 전시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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