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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6 04:59 수정 : 2019.09.26 19:55

17일 오전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 들어가는 길목 들머리에 방역 관계자들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파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충남 노동자 80여명 경기도서 살처분 참여
격리기간 없이 비감염 지역으로 돌아가
“다른 돼지농장 가지말란 말 못들어”
농장주들과 달리 ‘출입제한’ 조처도 없어
“일용직으로 살처분 ‘외주화’ 관행 개선돼야”

17일 오전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 들어가는 길목 들머리에 방역 관계자들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파주/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6일 경기도 파주에서 시작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연천과 김포를 지나 인천시 강화군까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충남 지역의 일용직 노동자 수십명이 감염지역인 경기도의 돼지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가 격리 기간도 없이 비감염 지역으로 돌아온 사실이 확인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농장주는 타지역 방문을 금지하면서 살처분에 참여한 노동자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방역망 체계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천안과 아산 등 충남 지역의 일용직 노동자 80여명은 지난 20일부터 두 차례 연천과 김포 지역의 돼지 살처분에 참여했다. 살처분 인력이 없는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는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인력업체를 통해 일용직 노동자를 동원하고 있다. 천안의 한 인력업체 사장인 ㅈ(67)씨는 지난 20일 아침 7시께 노동자 34명과 함께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연천군의 한 돼지농장으로 출발해 밤 9시까지 살처분 작업을 한 뒤 곧장 천안으로 돌아왔다. 또 ㅈ씨 업체 소속 노동자 54명은 지난 23일 밤 경기도 김포시의 한 돼지농장으로 이동해 ‘예방적 살처분’에 참여했다. 예방적 살처분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 3㎞ 이내의 농장 돼지를 죽이는 작업이다.

문제는 감염지역에 들어가 살처분을 하고 나온 노동자들이 격리 기간 없이 비감염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를 보면, 살처분 인력은 ‘10일간 감수성 동물을 사육하는 축사 및 축산 관련 시설에 출입을 금지’하고 있을 뿐 비감염 지역으로의 이동을 통제하는 규정은 없다. 살처분 인력이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다보니, 사후 관리·감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ㅈ씨는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라 하루 쉬고 나면 다시 건설현장, 청소, 밭일 등 여러 작업현장에 일하러 간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ㅈ씨와 함께 김포에서 살처분을 한 김아무개(59)씨는 “24일 아침 천안으로 돌아온 뒤 하루 쉬고 25일 아침에 열무밭에서 열무를 뜯어 먹는 고라니를 쫓아내는 등 밭일을 했다”며 “살처분 때 돼지농장에 방문하지 말라는 등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조심하라는 설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격리 기간이 없는 살처분 노동자와 달리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농장의 농장주는 이동이 철저히 통제된다. 농식품부의 긴급행동지침을 보면, 농장주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 행사장 출입이 금지되고 타지역을 방문해서는 안 된다. 인력업체 관계자들은 “(살처분 인력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는 있지만 빠른 살처분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도 살처분 인력을 충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역시 살처분 인력을 통한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살처분 인력 수요가 높아지면 타지역에서도 살처분을 하러 오기도 한다”며 “다시 그 지역으로 돌아갈 때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소독을 매우 철저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병홍 식품산업정책실장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인력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가 가장 우려된다”며 “살처분을 했던 사람이 다른 살처분에 투입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중점 관리 중”이라고 밝혔다.

허술한 방역망 탓에 비감염 지역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천안에서 양돈업에 종사하는 김아무개(64)씨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고 하는데 만약 이들이 돼지농장을 방문하면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천안은 양돈산업 규모가 국내 최대인데 여기서 한번 뚫리면 양돈산업 전체가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국 돼지 농가의 일시이동중지명령을 내린 상황에서 살처분 인력들을 비감염 지역으로 유출시키는 상황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가 4~19일 정도인 것을 고려해 이 기간에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선우선영 건국대 교수(수의학)는 “살처분을 하러 온 인력이 비감염 지역으로 돌아간 이후가 문제”라며 “소독과 방역이 철저히 이뤄지는 것에 더해 일정 기간 돼지농장에 방문하지 않도록 하는 긴급행동지침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정부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궁극적으로는 발생 지역 내에서 신속히 살처분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상시 방역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홍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국가재난형 질병이 터질 때마다 충분한 사전교육 없이 일용직 노동자들을 살처분에 투입함으로써 방역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며 “전문적인 방역 인원 충원에 대한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오연서 박기용 기자, 천안/김혜윤 김윤주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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