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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0 18:25 수정 : 2018.04.10 19:07

노혜경
시인

모든 연령층에서 사람들이 가짜뉴스와 가짜 문장에 속는다. 훈련받은 사람들이라도 모든 뉴스를 의심하고 소위 ‘팩트체크’를 일일이 해보기란 어렵다. 하물며 의도를 갖고 발설하는 언어를 비판적으로 알아듣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본격 가짜뉴스의 계절이 돌아왔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몇해 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나에게 열심히 카톡문자를 보여주는 분들이 있다. 교회 단톡방에서 받았는데… 성당 레지오 단톡방에서 받았는데… 동창회 단톡방에서 받았는데….

내게 문자를 전달해주는 분들 중엔 나에게 ‘진실’을 알려 ‘빨갱이’에게 속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분도 없진 않았겠지만, 대부분은 ‘이게 사실이냐’를 물어왔다. 처음 그런 글을 접했을 땐 “이런 걸 믿고 그러시냐”고 화도 냈지만, 차츰 다른 염려가 생겨났다. 정말로 이분은 이 글의 진위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좀 이상하긴 한데…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화만 낼 일이 아니었다.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언론읽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쉽게 가짜뉴스의 희생물이 된다. 문장이 재현하는 내용이 소위 ‘팩트’를 가리키는지를 분별하기 어렵다. 지식과 정보의 양도 부족하고, 문장 너머를 보는 연습도 안 되어 있다. 눈앞에 펼쳐진 문장의 배후에 어떤 실제 사실이 있을까를 추론해보는 일은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학습능력만 있어도 가능하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 학습능력을 쌓기 위한 교육과정과 연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모든 연령층에서 사람들이 가짜뉴스와 가짜 문장에 속는다. 훈련받은 사람들이라도 모든 뉴스를 의심하고 소위 ‘팩트체크’를 일일이 해보기란 어렵다. 하물며 의도를 갖고 발설하는 언어를 비판적으로 알아듣는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법적 대응도 엄격해졌다. 카카오톡과 네이버는 가짜뉴스를 올리거나 퍼나르면 이용정지 등의 대응을 하겠다고 공지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미국에서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되며 사용자가 많이 줄었다고도 한다. 플랫폼들이 자구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작이다. 심야에 나이 든 기사가 모는 택시를 탔더니 특정 정당 홍보요원 수준으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듣게 되는데, 심지어 제법 정교하다. 일주일 새 두 번쯤 같은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것이 퍼뜨려지는 이야기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가장 나쁜 가짜뉴스는 이처럼 정치권에서 퍼뜨리는 정치공방이다. 단기간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상대의 주장을 왜곡하거나 모함한다. 가짜뉴스에 대한 분별력이 있는 시민들도 자신이 신뢰하는 정치세력이 퍼뜨리는 정치선전에는 대부분 속는다. 신뢰하는 사람의 말도 다 옳지는 않다는 생각 자체를 심리적으로 하기 힘들다. 정치권이 정치공방을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일을 지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민화 시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우민화 전략을 ‘알 권리’라는 이상한 말로 보도해주는 언론이다.

한 단체장이 출장에 ‘여비서’를 대동했다는 자유한국당 발언과 이를 받아쓰기한 일부 언론의 태도는 또 다른 형태의 가짜뉴스를 생산한다. 팩트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비서의 성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암시하는 일종의 스포트라이트 효과를 노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서가 여성이라는 것이 암시하는 바는 문제가 된 사안과는 아무 상관 없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팩트’이기는 하나 고의적으로 선별 사용된 언어가 유발하는 잡음은 문제제기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려는 의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뉴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수많은 음모론이 이런 방식으로 가짜뉴스가 된다.

이런 방식의 공방, 이러한 우민화 시도는 말려들어 고립되고 한줌이 된 무지한 사람들이 배제되는 것으로 결국 끝나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너무 많은 사회적 상처가 생긴다. 너무 많은 우민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우민으로 있어도 마음 편해지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적 개인의 자유를 낭비한다.

선거철이 되자, 여기저기서 경선후보들끼리도 은밀하게 가짜뉴스에 의지한 네거티브 정치를 하려는 조짐들이 보인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조차 “우기면 말이 된다” 수준의 가짜뉴스를 만드는 세월인데 무언들 침몰하지 않겠냐만, 최소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당적 불문하고 진실이 결국 힘이 세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오래 어리석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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