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사무실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대해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고명섭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
한-미 정상 ‘적대관계 종식’ 북에 대한 안전보장 천명
실무협상 잘되면 연내 3차 정상회담 열릴 가능성 커
김정은 11월 답방 땐 남-북-미 3자 선순환 획기적 의미
‘비핵화 범위 설정-미국의 상응조처’ 조율이 협상 의제
미, ‘영변+비밀 핵시설’ 신고와 포괄적 핵동결 요구할 것
북한은 금강산·개성공단 외 민생·민수 제재 해제 관심
|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사무실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대해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공직자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2000년, 2007년,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대통령을 수행해 참가한 유일한 사람이다. 국제정치학의 해박한 지식과 미·중·일의 학계·정계 주요 인물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학자다. ‘북-미 비핵화 협상’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는 문 특보를 만나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문 특보는 “북-미가 이달 말에 실무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고, 협상이 잘되면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무협상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더해, ‘비밀 핵시설’ 폐기를 약속하고 전면적인 핵 동결에 합의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도 밝혔다. 인터뷰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통령외교안보특보실에서 이뤄졌고, 24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추가 전화 인터뷰를 했다.
― 뉴욕에서 열린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정상이 북-미 관계와 관련해 합의한 내용입니다. 70년 북-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는데요, 이건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정신을 존중하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보장에 대해 다시 한번 총론적인 약속을 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가 논의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북-미 협상이 급물살을 타는 과정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북-미 실무협상에도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것이 방위비 분담금 관련 문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강조한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대규모 군사장비를 구매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도 앞으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뤄질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 국정원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달 초 북-미 실무협상이 열려 성과가 나오면,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 위원장이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이행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미, 한-미의 3자 관계가 선순환관계에 들어간다는 획기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 전쟁광이라고 불리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됐습니다. 볼턴이 ‘리비아 모델’을 주장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그건 큰 잘못이었다’고 한 것은 북한에 주는 함의가 커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리비아 모델이라는 게 ‘선 해체, 후 보상’이잖습니까. 어떻게 보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빅딜’이라고 하는 것이 리비아 모델에 가깝죠. ‘핵무기, 화생무기, 미사일을 전부 해체하라, 그러면 북한 경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북한 입장에서는 ‘선 해체 후 보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북한으로서는 하노이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 모델까지 거론하면서 볼턴을 해임한 건 좋은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할 수 있죠.”
―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9월 하순에 만나자고 미국에 공식적으로 제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실무협상을 하자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냈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 모두 실무접촉을 하자고 했으니까 조만간 이뤄질 거라고 봅니다.”
― 그러면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까요?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 4월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고 했는데요.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실무접촉이 잘 돼야겠지요. 의제는 두가지라고 봅니다. 첫째는 비핵화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 둘째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행보를 보였을 때 어떤 상응조처를 취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이 의제를 두고 북-미 간에 마찰이 많을 거라고 봅니다. 우선 비핵화의 범위를 보면, 미국은 영변 핵시설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서 북한이 은닉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 핵시설을 신고하고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해달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 한가지 더 있는데, 핵 동결을 요구할 거로 봅니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영변을 포함해 은닉된 비밀 핵시설에서 계속 핵 활동을 하면서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핵물질 추가생산을 중지하고 완전하고도 포괄적인 핵 동결을 하라고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완전한 핵 동결을 하려고 하면, 영변 외에 다른 핵시설에 대해 신고를 해야 된단 말이죠. 북한이 이렇게 영변 외 핵시설을 신고하고 핵 활동을 중지하는 것까지 이번 협상에서 받아들일지는 지금으로선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은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제안한 대로 영변 핵시설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기본 입장이에요. 영변에 있는 5메가와트 원자로부터 시작해 연료 생산공장, 플루토늄 생산시설, 고농축 우라늄 시설, 수소폭탄 만드는 데 필요한 삼중수소 실험실, 이런 것들을 전부 폐기하겠다는 겁니다. 영변 핵시설 영구폐기를 받아들여 미국이 상응조처를 해주면 그게 중요한 신뢰 구축의 계기가 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기 때문에, 비핵화의 범위에 대해서 미국과 북한이 상당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 비핵화를 이끌려면 미국도 상응조처를 해줘야 할 텐데요.
“그렇죠. 협상이라는 게 그럴 수밖에 없지만, 미국도 적게 주고 많이 받길 원하고 북한도 적게 주고 많이 받길 원하니까 상응조처에서 조율이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풍계리 핵실험장 국제사찰, 동창리 미사일엔진 실험장 해체, 그리고 영변 시설 완전 폐기에 더해 완전한 핵 동결을 요구할 겁니다. 그 대가로 줄 수 있는 걸로 미국은 아마 인도적 지원 재개와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를 고려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북한이 수용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 그렇겠죠.
“북한은 더 큰 걸 원하죠. 며칠 전에 권정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의 담화에서도 나왔지만, ‘제도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의 장애물’을 제거해달라는 겁니다. 제도의 안전이란 북한의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을 해달라는 겁니다. 안전보장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미 관계의 정치적인 정상화, 즉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이죠. 둘째는 군사적 보장 문제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전략자산 전진 배치를 하지 않고, 불가침조약을 맺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또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라는 것은 경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은 당연히 재개하는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한 다섯가지 제재결의안 중에서 북한의 민간경제·민생과 관련된 부분을 해제해달라는 것인데, 이번에 실무협상에서도 그걸 주장하겠죠.”
―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라는 건데요. 미국이 받아들일까요?
“지금 미국의 태도로 봐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낡은 계산법이죠. 그걸 바꿔서 안전보장과 제재 완화에서 파격적인 조처를 해줘야 새로운 계산법이라고 보겠죠. 그렇게 되면 미국도 북한에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라고 얘기할 거고요. 이걸 조율하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닐 겁니다.”
― 그러겠죠. 어쨌거나 미국 입장에선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시했던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신선도가 떨어지니까 거기에 뭔가 더해져야 새로운 협상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건 당연합니다. 하노이를 재현하는 것은 미국도 북한도 원하지 않죠. 하노이 제안보다 혁신적인 안이 나오길 바라죠. 그러니까 북한은 미국이 하노이에서 제시한 빅딜에서 물러나 양보를 해야 한다고 보는 거고요.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의 영변 카드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보니까, 북한이 영변 카드를 넘어선 것을 가지고 나와야만 새로운 셈법이 되는 거죠. 미국과 북한이 다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와야 실무협상이 성공적으로 되고 3차 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겠죠.”
― 많은 사람들이 ‘하노이 회담’을 실패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 정상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다시 만났고, 북-미가 정상 수준에서 처음으로 가장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나왔어요. 결렬이 됐지만 가능성은 많이 보인 거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협상을 통해 3차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면, 더 구체화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제1전환이었다면 제2전환은 하노이 정상회담이고 이제 세번째 전환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 올해가 가기 전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국내 정치적 상황을 볼 때 그렇습니다. 내년 대선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외교 문제거든요. 이란,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은 실패로 돌아갔고, 안보 부문에서 남아 있는 건 북한 핵 문제입니다. 트럼프-김정은 두 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가 좋고, 하노이 협상이 결렬됐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차이점을 좁힐 수 있습니다. 내년 대선 전에 북핵 문제의 가시적 성과를 얻으려고 하면, 올해 안에 평양에서든 제3국에서든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본인의 외교 역량을 보여야 합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평양을 방문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 실무협상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그건 당연한 거지요. 평양 가겠다고 하면 협상 지렛대를 무력화하는 게 되니까요. 미국이 원하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에 구체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그러니까 영변에 더해 은닉된 핵시설을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완전한 핵 동결을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상당한 외교적 성공이 될 테니까, 평양에 가서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북한은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남쪽 당국자들과는 마주앉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우리와 왜 접촉을 안 하느냐 복기를 해보면, 첫번째는 지난해 9월 9·19공동선언 채택할 때, 영변 핵시설을 완전 폐기하면 상응조처를 해줄 것이라는 그런 아이디어가 남에서 온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걸 하노이에 가서 제시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 보니, 한-미 간 조율이라는 게 북한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깊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거고요. 두번째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두 정상 간에 합의한 사항이란 말이에요. 우리야 민주주의 국가니까 정상이 합의한 것도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지만, 북한에서는 지도자가 합의하면 절대적인 것인데 돼야 할 것 아니에요. 가령 올해 신년사에서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재개돼야 한다고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를 했는데 그게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까 실망감이 클 거고요. 세번째로는 지난해 9·19 군사합의 문제입니다. 그 자체가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자제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북한 관영매체나 외무성 담화를 종합해서 보면, 북한 입장에선 자기네는 가만히 있는데, 한-미 간에는 연합군사훈련도 하고 F35-A 스텔스 전투기도 들여온단 말이에요. 정보당국자가 국회에서 설명했듯이, 남에서도 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10여차례 했다고 하고, 이런 것을 봤을 때 신의를 배신한 것이 남쪽이라고 보는 것이죠.”
― 만약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보인다고 한다면 그때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개성공단은 당장 안 되더라도 금강산 개별관광이라도 된다고 하면 북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봅니다.”
― 몇 달 전에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 가보니 북-미 비핵화 합의가 가능할 거라고 낙관하는 사람이 1%에 불과한데 트럼프 대통령이 그 1%에 속해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그게 스티브 비건과 이야기하던 중에 나온 얘깁니다. 제가 ‘미국 가보니까 30%는 비관주의자고, 30%는 냉소주의자고 30%는 회의주의자더라, 10%가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중에서도 9%는 아주 조심스러운 낙관론자들이고 1% 정도만 진짜 낙관론자다’ 그런 얘기를 하니까, 비건이 ‘내가 그 1%에 속한다’면서 그 옆자리에 있던 알렉스 웡 국무부 부차관보와 엘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선임 보좌관이 다 1%에 속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 1%에 속한다는 겁니다.”
― 역대 대통령 중에서 북-미 관계를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면서 북한 체제를 바꾸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시각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 우리 외교안보 사안 중에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도 있습니다. 일본이 경제보복 철회를 한다면 지소미아를 바로 복원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보라고 하는 게 다다익선이니까, 지소미아를 유지하는 게 좋죠. 일본이 지난 7월1일 반도체 관련 세 품목 수출규제 발표를 하면서 ‘한국을 믿을 수 없다’고 했거든요. 한국을 믿을 수 없다는데, 믿을 수 없는 상대와 어떻게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해요. 그건 모순 관계죠. 군사협력의 측면에서 볼 때 일방이 타방을 믿지 못하는데, 믿지 못하는 상대가 주는 정보를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먼저 신뢰를 회복해야죠. 신뢰를 회복하려면 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복원해야죠. 그러면 일본이 우리를 믿는다는 것이 되니까 지소미아를 재개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상식의 문제예요. 저는 우리 안보환경을 위해서 지소미아는 가능하면 많은 나라와 맺는 게 좋다고 봐요, 우리가 30여 나라와 지소미아 관계를 맺고 있는데, 중국을 포함해서 많은 국가들과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 2016년 일본과 지소미아 체결 전에는 진보진영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명백히 알아야 할 것은 지소미아는 알맹이 없는 컴퓨터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가령, 한국과 일본이 군사정보를 교류를 하는데 교류한 정보를 그 나라의 군사비밀보호법에 따라서 잘 보관되게 해달라는 게 지소미아예요. 우리가 전달한 군사정보를 제3국에 공유하지 말라, 그리고 서로가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자는 것이거든요. 이게 전부 형식과 절차에 관한 합의예요. 1급 비밀을 주느냐, 2급 비밀을 주느냐, 3급 비밀을 주느냐 하는 것은 규정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지소미아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요. 만일 한-일 관계가 좋아지면 1급 비밀도 교환할 수 있겠죠. 지소미아가 있더라도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3급 비밀밖에 안 줄 수도 있고 아예 군사정보 공유를 안 할 수도 있어요. 물론 미국이 한-일에 지소미아 체결을 요구한 건 미사일방어체제(MD)를 염두에 둔 건데, 사실 우리는 엄격한 의미에서 미국 주도의 동북아 미사일방어체제에 참여를 안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건 지소미아 자체를 그렇게 쟁점화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지난 10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주최로 열린 ‘김대중, 빌리 브란트, 넬슨 만델라 : 화해, 연대 그리고 평화의 정치’ 국제심포지엄 기조 강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제적 감각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회고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현실주의자’였다고 평가했는데요. 특히 “김 전 대통령은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열강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강대국의 힘을 활용해 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한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풍부한 상상력”이라는 건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 국면에서 4대 강국 교차승인론을 얘기했고 4대 강국 안전보장론을 얘기했거든요. 남북이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그것을 4대강 국이 보장해주는 것,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해주고 소련(러시아)과 중국이 한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해주는 것이었어요. 당시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제안이었고, 그래서 ‘빨갱이’ 소리를 들었죠. 그때만 해도 냉전체제 아래서 분단과 대결이라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고 봤거든요. 김대중 대통령은 현상 타파를 하려면 남북이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고 생각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불신하고 있으니, 남북이 평화조약을 맺을 때 4대 강국이 보장해주면, 4대 강국 보호 속에서 평화체제 만들고 평화통일로 갈 수 있다’는 제안이었는데, 참으로 뛰어난 생각이었죠. 김대중 대통령이 1971년 제안한 4대 강국 교차승인론을 74년에 헨리 키신저 박사가 미국 국무장관일 때 똑같이 얘기합니다. 키신저보다 3년 앞서 교차승인론을 제안한 거죠. 남북관계, 외교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그런 식의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michae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