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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6 17:37 수정 : 2019.09.27 14:4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는 한국도로공사 본사 곳곳에는 “우리가 옳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처음 이 글귀를 보았을 때 ‘대법원에서 승소했으니 옳다고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대법원은 “요금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와의 상호 유기적인 협조와 지시를 통해 업무를 수행했고, 요금수납원들은 한국도로공사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서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했기 때문에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이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그런데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옳다’는 자부심은 대법원 승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면서 온갖 갑질에 시달렸다. 영업소 소장의 텃밭을 관리하거나 아침마다 소장의 밥을 차려서 대령하기도 했다. 소장 술자리 상대도 했다. 외모 지적, 비하 발언, 성희롱과 성추행도 일상이었다. 하이패스 단말기 강제영업도 했다. 영업소 소장들은 한국도로공사의 퇴직자가 다수인데, 이들에게 밉보이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참고 일했다. 그러다 노조를 만나 투쟁을 시작하면서 불합리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지금도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는 데에서 “우리가 옳다”는 자부심이 생긴 것이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하급심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면서 자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전환을 강요했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면 해고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1500명 노동자들은 그 길을 선택했다. 자회사는 가짜 정규직이며 직접고용이 옳은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1500명이 집단적으로 해고되었지만 이 노동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으며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서, 청와대에서 당당하게 싸웠다.

한국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불법파견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부당한 선택을 강요했다. 대법에서 승소한 304명만 직접고용을 하되, 청소나 제초 업무를 시키겠다고 했다. 대법원 승소자와 하급심에 계류 중인 노동자를 갈라놓고, 청소나 제초 업무를 할 수 없는 장애인 노동자를 갈라놓은 것이다. 그러고는 직접고용 대상자들에게 교육을 받으러 오라고 일방적으로 공지했다. 대법 승소자가 이 교육을 받으러 가면 직접고용이 되겠지만 “모두가 직접고용이 되자”던 약속을 못 지키게 된다. 그리고 교육을 받으러 가지 않으면 해고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5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교육을 거부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동료들과 함께 정규직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304명만 직접고용 하겠다”는 회사의 발표에 항의하여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본사를 점거했다. 그러자 공사는 출입을 통제하고 정규직을 구사대로 동원했다. 농성장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환풍기도 작동하지 않는다.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는 의료진의 접근도 차단돼 있다. 기자의 출입도 통제하고 있다. 불법파견을 저지른 한국도로공사가 피해자들을 이토록 겁박할 수 있는 것은, 공사의 잘못을 제재해야 할 이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와 청와대는 문제를 한국도로공사에 내맡기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제대로 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으며, 경찰은 구사대와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도 속출하고, 강제해산의 위협도 있지만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은 웃으며 싸운다. 정규직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의 전리품이 되어버린 시대, 비정규직이라서 일터에서 죽는 시대, 고용형태가 신분제가 되어 모욕과 차별이 정당화되는 시대다. 그런데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1500명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위해 자신들이 앞장서겠다고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기보다 ‘함께 살기’를 택한 이들의 걸음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곳을 밝히기에 이들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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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김혜진, 노동 더불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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