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4 14:55
수정 : 2019.12.04 20:10
‘세비’는 국회의원이 받는 월급이다. 일반 근로자가 받는 돈은 임금·봉급·급여·연봉 등으로 불린다. 왜 유독 의원들이 받는 돈만 세비라는 유별난 명칭이 붙었을까?
세비에 대한 첫 법률적 근거는 정부 출범 이듬해인 1949년 3월31일 제정된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에 마련됐다. “국회의원 1인당 세비 연액 36만원을 지급한다.” 이후 법률이 수차례 개정되면서 세비가 인상됐다. 이어 1973년 2월7일 제정된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서 세비가 ‘수당’으로 대체됐다. 법적인 족보가 46년 전에 끊겼음에도 여전히 살아남았으니 끈질긴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강점기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동아일보>의 1933년 2월14일자 기사는 “경성부에서는 금번 부회 의원들의 회의수당을 세비제로 개정하고자 신년도에 그의 개정안이 작성되었다”라고 전한다. 자치의결기관인 부회의 구성원에게 세비라는 용어가 쓰인 것이다. 1910년 8월22일 체결된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 황태자 전하 … 등이 각기 지위를 응하여 상당한 존칭(중략)을 향유케 하고, … 세비 공급을 약속함.” 일제가 나라를 빼앗는 대가로 조선 황실에 생활비 명목으로 세비를 지급한 것이다.
이쯤 되면 짐작이 되겠지만 세비의 기원은 일본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근대 이후 일본에서 세비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130년 전에 제정된 ‘의원법’이다. “각 의원의 의장은 세비로 5천엔, 부의장은 3천엔(중략)을 받으며 … ”
올해 국회의원의 월 세비는 수당·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를 모두 합쳐 1265만원이다. 연봉으로는 1억5천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 1544만명 가운데 최상위 1%의 연봉 하한선인 1억3467만원보다 많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적지 않다. 세비 총액이나 1인당 국민소득(GNI) 기준으로 모두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 우리나라 경제규모 순위 11~12위보다 높은 셈이다.
예산안에 따르면 세비는 내년에 2.1% 오를 전망이다. 활동비가 동결되지만, 수당이 공무원 공통처우개선율인 2.8%만큼 인상되기 때문이다. 2012~2017년 6년간 동결됐지만 2018~2020년 3년 연속 오르게 되면서, 의원들의 ‘세비 셀프인상’ 논란이 불거진다. 세비 인상에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최근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사태가 보여주듯 당리당략만 앞세우는 ‘일하지 않는 국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회 혁신방안의 하나로 의원 회의 일수 10% 이상 불출석 시 페널티로 세비 삭감을 제시하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세비를 30% 삭감, 최저임금의 5배 이내 제한 등의 방안을 내놓은 이유다.
세비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비용이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한다면 세비 지출에 무조건 부정적인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먼저 세비 인상을 요청하는 세상은 언제쯤 가능할까?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