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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16 20:18 수정 : 2010.12.16 20:18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은 그야말로 ‘정체 사회’다. 물가 수준도, 노동자의 급여 수준도 2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625개 대기업의 올해 연말 상여금을 집계했더니, 20년 전과 거의 비슷한 1인당 평균 71만8986엔이었다고 한다. 그런 일본에서 보면, 연간 6%나 성장하며 잘나간다는 한국 경제엔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 보인다.

일본 재계는 한국의 낮은 법인세를 칭찬한다.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4.2%로 40.69%인 일본의 거의 절반이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법인세를 인하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또 크게 내렸다. 그 결과 홍콩, 싱가포르, 아일랜드를 빼고는 세계 최저 수준이 됐다. 그로 인해 기업 투자가 크게 늘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이윤이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다. 반면 정부 재정여력은 크게 위축됐고, 복지재정은 쪼그라들고 있다.

재계의 압력에 밀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도 결단을 했다. 내년에 법인세 실효세율을 40%에서 35%로 낮추기로 했다. 세수 감소액은 1조5000억엔가량이다. 재정 부족 때문에 어린이수당(월 2만6000엔) 전액 지급을 포기한 판에, 재정적자는 더 커지게 됐다. 감세를 한다고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는 보장은 물론 없다. 정부 안에서는 “기업들한테 각서라도 받아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 재계는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수출시장의 경쟁 조건에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고도 칭찬한다. 간 총리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를 논의할 뜻을 밝혔다. 한국 및 유럽연합과 경제협력협정(EPA) 협상도 제안했다. 관세 철폐를 통한 수출 증대는 경쟁력이 낮은 자국 산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이를 아예 무시했고, 일본은 지나치게 의식했다. 간 총리가 ‘제3의 개국’을 선언한 데 대해, 각료들도 마냥 손뼉을 치지만은 않는다. 그 부작용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사실 일본의 재계는 요즘 한국 경제가 잘나가는 이유가 ‘원화 약세, 엔 강세’ 덕이라는 걸 잘 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전 100엔당 760원가량이던 원-엔 환율은 올해 11월 평균 1366원이다. 그럼에도 이는 제쳐두고 한국을 열심히 칭찬하는 것은, 법인세를 낮추고 자유무역협정에 나서도록 일본 정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다. 엔 강세의 악조건 속에서도 현재 도요타·혼다·닛산 3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33.5%이고, 현대차그룹은 7.8%이다. 일본 재계의 한국 칭찬은 엄살에 가깝다.

보통의 일본인은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볼까? 지난 8월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마련한 양국 젊은이들의 토론회에서 한국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고, 빈곤인구가 늘고 있으며,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법인세 인하나 시장 개방은 경쟁력 향상을 위한 묘수가 아니다. 그저 앞당겨 쓰는 빚 같은 것이다. 한국은 그 뒷감당을 하지 않는다. 한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일본 기업에 비해 훨씬 낮은 삼성 직원의 평균연령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은 속도 하나는 빠르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어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친다. 큰 위기를 겪을 때마다 더욱 그런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마다 대기업의 이익은 계단식으로 폭증하곤 했다. 2000년 30조원에 조금 못미치던 우리나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이 올해는 9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길고 짙다. 20년 정체를 겪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 이유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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