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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7 19:16 수정 : 2011.02.17 19:16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탄저우취안(33)에게 중국 첫 경제특구 광둥성 선전의 공장지대는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신세계였다. 후난성 롄위안의 비참하게 가난한 농촌 고향은 이제 먼 세계가 된 것 같았다. 1995년 그는 “몇년만 고생하면 집안 형편도 나아지고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아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선전행 기차를 탔다.”

홍콩계 액세서리 공장에서 보석 원석을 자르는 일자리를 구했다. 환풍기도 설치되지 않은 150㎡ 남짓한 작업장에서 젊은 농민공 100여명이 마스크도 없이 온종일 돌을 잘랐다.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느라 잔업이 계속됐고 밤을 꼬박 새우는 날도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침을 뱉으면 검은 돌을 자른 날은 침이 검은색이었고, 붉은 돌을 자른 날은 붉은 침이 나왔다”고 그는 회상한다.

2001년 심한 기침이 시작됐지만 2006년에야 규폐증 직업병 확진을 받을 수 있었다. 어렵게 받아든 진단서를 들고 회사를 찾아간 그를 사장은 문밖으로 내쫓았다. 4년의 힘겨운 소송 끝에 지난해 배상 판결을 받아낸 순간 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확진을 받았을 때 사장이 양심이 있어 1만위안만 줬다면 치료할 희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병이 악화돼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됐다”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중국의 현재와 변화를 살피는 연재 기사 ‘중국의 길’을 취재하는 동안 광둥성 ‘세계의 공장’ 지대에서 경제 기적 뒤의 이런 비극을 여럿 만났다. 탄저우취안 같은 농민공들은 세계 양대 경제강국으로 떠오른 오늘의 중국을 만든 주역이자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이들이다. 오늘날 중국의 농민공들은 자신들의 현실과 “자본가의 편이 된 공산당”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분명 중국은 모순이 들끓는 사회다. 지난해 젊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자살이 계속된 것은 그런 징후다. 소설가 위화는 최근 출판한 <열 단어 속의 중국>에서 중국인들이 “무대의 절반에서는 코미디가 공연되고 다른 반쪽에서는 비극이 공연되는 기묘한 극장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오랫동안 서구와 일본, 한국 언론들은 중국이 빈부격차와 사회적 모순으로 성장궤도에서 탈선할 날이 올 것이라는 시선으로 중국을 손가락질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집트, 튀니지의 ‘혁명’을 보면서 젊은이들의 좌절이 중국을 넘어선 세계의 공통된 문제임을 깨닫는다.

힘겹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노점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려 전재산인 채소와 과일을 압수당한 튀니지 젊은이 무함마드 부아지지(26)의 분신 자살이 중동의 역사를 다시 썼다. 최근 번역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 장관은 미국 역사에서 소득 상위 1%가 전체 부의 23%를 차지했던 1928년과 2007년 곧바로 대공황과 경제위기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권력자들은 쉽게 망각하지만 역사는 계속 반복돼 왔다. 18~19세기 청과 조선, 일본에서도 농지가 일부에게 집중되고 빈부격차가 급격히 심해졌을 때 절망한 농민들의 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근 중국 지도부가 성장보다 분배를 내건 12.5 계획을 시작하고, 농민공 임금 인상, 부동산가격 억제책과 금리인상 조처를 내놓는 것은 이런 역사적 경고음을 민감하게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만용’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절망, 전셋값과 식품값 급등 등 문제의 징후는 뚜렷한데, 부자감세와 4대강 공사 등으로 모자라는 재정을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등 ‘월급쟁이 증세’로 해결하려다 반발을 사고 마땅히 늘려야 할 저소득층 복지는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는 소식들뿐이다. 한국의 지배층은 세계적으로 가장 대담한 것일까.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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