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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03 20:05 수정 : 2011.03.03 20:05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걸고 나가자/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이 목숨 다 바쳐/ 해방의 함성으로 가열찬 투쟁으로/ 반전~반핵. 양.키.고홈.”

1980년대 후반 대학에선 집회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반전반핵가>를 불렀다. 한때 이 땅에는 1000여기에 이르는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돼 있었다. 그러다 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남아 있던 100여기의 전술핵무기가 모두 철수됐다.

보수언론들은 얼마 전까지 진보진영을 향해 북핵에 우호적이라며, ‘반전반핵가를 외치던 이들은 다 어디 갔나?’라고 몰아붙였다. 메아리가 채 잦기도 전에 때아닌 전술핵 재배치 논쟁이 최근 서울과 워싱턴을 잠시 들썩였다.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고, 일부 의원들이 동조해 작은 파문이 일더니, 게리 세이모어 미국 백악관 대량파괴무기 정책조정관이 ‘사견을 전제로’, ‘한국이 원한다면’ 등의 단서를 첩첩이 달아, “(그렇다면) 전술핵을 재배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 재배치론자들은 “거봐라”며 날개를 단 듯했다.

‘선입관을 버리고’, ‘어떤 주장도 받을 자세를 갖춘 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봐도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전술핵을 가져다 놓으면, 북한에 대한 핵 맞대응이 되고, 위협을 느낀 중국이 북한에 핵포기 압력을 넣는다는 시나리오다. 궁금했다. 진짜로 그걸 믿는 건지.

이미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 핵이 한반도에 없을 뿐이지, 한반도 주변 미 항공모함, 공군 전투기 등에 전술핵이 갖춰져 있다. 북한 핵공격에 남한도 핵으로 맞서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전술핵이 군산에 있을 때와 오키나와에서 발사할 때의 차이는 5분이다. 이 때문에 재배치론자들도 상징성을 강조한다. 그러면 그 상징성에 겁먹어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믿는 걸까? 북한에는 핵개발 빌미를, 중국에는 북한 비호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또 미국은 한국의 ‘키다리 아저씨’인가? 일부 보수언론은 “전술핵을 재배치했다 북이 태도를 바꾸면 언제라도 철수하면 될 일”이라고 한다. 미국은 한국이 (전술핵을) 달라면 주고, (이제 필요 없으니) 가져가라면 가져가는 그런 나라였던가? 미국은 한국과의 원자력협정에서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한 핵연료 재활용도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계’의 실질적 최우선 목표인 ‘핵 확산’ 금지에도 정면배치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유럽에 배치된 전술핵 무기도 없애려 한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는 러시아, 중국과의 핵협상도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일제히 부인했다. 그럼에도 지난 1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북한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행정부에 쐐기를 박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민주·공화 구분이 없었다. 이번 일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수 의원들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랬겠지’라고 억지로 이해해 보려고도 했다. 세상을 보는 시각과 미래 전망을 달리할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혹 안보정국을 불러일으키려는 국내정치용 의도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북핵을 공부하다 보면, 91년 노태우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된다. 2011년 한반도 보수층은 20년 전 노태우 대통령 발끝에도 못 미치고 있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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