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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0 20:10 수정 : 2011.11.21 16:09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공자는 마오쩌둥을 내려다보며 근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난 주말, 중국 국가박물관 문 앞에 서 있는 9.5m 높이의 거대한 공자상의 표정을 새삼 꼼꼼히 들여다봤다. 지난 1월 세워진 공자상은 맞은편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의 초상화보다 크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였다가 배신자가 돼 죽은 린뱌오(임표)와 봉건주의의 대표 공자를 함께 타도하자는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이제 ‘중화의 세기’의 상징으로 천안문광장 한편에 들어선 공자를 마주보게 된 마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역사는 예측 불허다.

공자상 곁을 지나 ‘세계 최대 박물관’으로 새단장한 국가박물관으로 들어섰다. 오는 17일까지는 ‘부흥의 길’이란 전시만 공개하고 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탐욕에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혔고 중국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태평천국, 의화단, 국민당의 ‘실패’를 거쳐 공산당이 최후의 구원자로서 중국을 어떻게 도탄에서 구해내고 세계 양대 강국으로 부흥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진과 유물들이 펼쳐져 있다.

중국의 근현대사는 분명 장엄한 드라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문제들로 처참하게 몰락했다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한숨, 피와 눈물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오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휘황한 경제 성장=중화민족의 부흥=위대한 공산당의 통치’임을 강조하는 정치적 목적에 박제된 역사는 뭔가가 빠져나간 듯 지루했다. 박물관을 나서며 20~30년 뒤 이 전시에는 어떤 모습의 중국이 더해져 있을지 궁금했다. 애국주의에 기대어 당이 여전히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국일까, 국민들의 권리와 자유가 커진 소통하는 중국일까?

지난 6일 ‘재스민 시위’가 예고된 왕푸징은 그런 질문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 거대한 무대였다. 집회 장소로 지목된 맥도널드와 케이에프시(KFC) 매장 안의 많은 ‘손님’들은 무전기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계속 주변을 살피는 사복경찰들이었다. 거리의 ‘청소부’들도 눈에 띄게 깔끔한 차림으로 쓰레기도 없는 도로를 빗자루로 계속 쓸면서 행인들이 모일 수 없게 했다. 공사를 하지 않는데도 거리 한가운데를 공사장 가림막으로 막았다. 살수차들은 물청소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거리를 계속 돌아다녔다. 모두가 연극을 하고 있었다. 시위는 없었지만, 권력의 불안함만 가득했다.

금융위기 이후 자신감에 넘쳐 보이던 중국은 올 들어 지나치게 불안해 보인다. 인터넷에 떠도는 ‘재스민 시위’ 촉구 글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에서 중동식 재스민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무엇을 두려워할까?

‘성공의 역설’로 인한 개혁의 어려움이다. 중국의 초고속 경제발전에 가려진 부작용과 그 해법은 중국 당국이 누구보다도 잘 진단하고 있다. 부동산 폭등으로 집을 살 수 없고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절망, 특권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 강제철거에 분신으로 항거하는 가난한 이들의 절규를 공산당이 누구보다 심각하게 인식한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정치개혁을 통해 권력을 나누고 인민들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중국 지도자들도 알고 있지만, 공산당, 정부기구와 깊숙이 얽혀 있는 막강한 이익집단들은 자신들의 특권에 손을 대는 개혁에 강하게 저항한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는 ‘안정’만을 외치고 있다. 30년마다 과감한 개혁으로 위기를 돌파해온 중국 공산당이 이번에도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중국과 세계의 미래를 바꿀 질문이 중국을 뒤덮고 있다.


20년 뒤 천안문광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마오일까, 공자일까, 인민일까?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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