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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24 19:43 수정 : 2011.03.24 19:43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중폭격에 대해선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예멘 대통령이 연내에 물러난다고 한 것에 대해선 (미국은) 긍정적(‘그 정도면 됐다’)이라고 보는 것이냐?”

“시리아는 최근 수백명의 인권운동가들을 체포했다. 미국은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

22일 오후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마크 토너 부대변인은 미국의 리비아 군사개입과 관련한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쩔쩔맸다. 토너 부대변인은 미국의 군사개입 이유로 ‘리비아 국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목적’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으나, 기자들은 형평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부대변인은 “답이 없다”, “잘 모른다”, “알아보겠다” 등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막판에 한 기자가 “리비아 정부는 몇년 전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했으나, 미국은 리비아에 약속했던 ‘관계개선’이란 선물을 주지 않았다. 이걸 본 이란과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느냐?”고 쐐기를 박자, “서로 관련 없다”며 맞서다 “가야 한다”며 1시간의 ‘고문’에서 탈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 딜레마’에 빠졌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터이긴 하지만, 크루즈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지상군 투입은 없다”, “미국은 지원일 뿐이다” 등 선전포고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거주춤한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더 혼란스럽다. 리비아 군사개입은 ‘인도주의와 외세개입’, ‘다른 중동국가와의 형평성’, 그리고 ‘헌법적 논란’까지 더해져 전쟁터 바깥쪽에선 형이상학적 철학 논쟁이 벌어진다.

9·11 이후 알카에다 공격을 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는 미국민들 모두가 지지했고, 이라크 전쟁에는 진보·보수가 딱 갈렸는데, 이번에는 전선도 뒤섞여 찬성·반대가 민주·공화당 양쪽에 모두 걸쳐 있다. 민주당 안에서도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 등이 ‘인도주의’라는 진보 가치를 내세우며 적극 지지하고 있지만, 또다른 민주당내 진보진영 일부는 법적 문제를 거론하며 반대하고 있다.

리비아 전쟁은 오바마에게는 할 수만 있다면 물리고 싶은 ‘정치적 독배’나 다름없다. 아직도 진행중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전이 ‘부시의 전쟁’이라면, 리비아는 온전히 ‘오바마의 전쟁’이 된다. 상황이 장기화되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미국은 리비아의 반군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고, 다양한 부족으로 나뉜 리비아 반군에는 온갖 세력이 들어와 있다. 자칫 리비아가 오바마의 ‘개미지옥’이 될 수도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지 지금의 오바마를 보면, 100년 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오버랩된다. 인종주의적 편견을 지닌 윌슨을 최초의 흑인대통령 오바마와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은 측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윌슨은 오바마가 부시에게 그러했듯 파나마, 하와이, 괌, 필리핀 등을 침략하며 제국주의로 뛰어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선 뒤에는 노동시간 단축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펴고, 연방준비은행 설립 등 월가 금융자본의 힘을 제어하고, 필리핀에 자치를 허용하는 탈제국주의 등 개혁·진보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고립주의를 표방하던 윌슨 대통령은 “평화보다 가치있는 것이 정의”라며 1차대전 참전을 선언했다. 제3세계로부터 ‘미 제국주의’라는 말을 듣게 되는 시초가 거슬러 올라가면 이때였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은 진공상태가 아니기에 리비아 문제의 해법을 오바마에게 제시하는 건 힘들다. 진보 시각에선 식이 더 복잡해진다. 그러나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듯한 지금이 답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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