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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8 19:37 수정 : 2012.03.08 19:37

정남구 도쿄 특파원

피난을 시키기보다
나중에 배상하는 쪽이
비용이 훨씬 적게
들 거라는 계산인가

내가 살고 있는 도쿄 고토구 오지마 주변의 방사선량을 기록한 자료가 한달 전쯤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일본공산당 도쿄도의회 의원들이 잰 것이었다. 아이들이 자주 놀러가는 근처 공원의 지상 1m 지점 방사선량이 시간당 0.15마이크로시버트였다. 문부과학성이 발표하는 도쿄 신주쿠 측정치의 세배쯤 됐다. 엊그제 구청이 다시 재서 공표한 것을 보니 도의원들이 잰 것과 수치가 거의 비슷하다. 도쿄에서도 동쪽의 가쓰시카구, 에도가와구, 고토구는 방사능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다. 지난해 3월20~21일 사이 방사능구름이 지나갈 때 강하물이 하필 이곳에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머물러 살아도 될까’ 오래 고민하다가 얼마 전 주택 임대계약을 그냥 갱신했다.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스트레스도 만만찮을 것 같았다. 자연 방사선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의 문산이나 속초와 수치가 비슷하니 큰 문제는 없겠지라고 자신을 위안했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꺼림칙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물은 생수로 바꾼 지 오래고, 쌀도 우체국 통신판매를 활용해 서일본에서 주문해 먹기 시작한 지 꽤 됐다. 다행히 우리 가족이 이용하는 생활협동조합은 모든 식재료의 방사능 검출량을 알려주니 방사성 세슘이 1㎏당 10베크렐(검출 한계치) 이상 검출된 것은 구매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일일이 신경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큰 스트레스다.

내가 사는 곳보다 방사선량이 몇배나 되는 지역에 사는 이들은 어떨까? 대지진과 원전사고 1년을 맞아 후쿠시마현 일대를 최근 돌아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대지진 이후 더욱 뼈저리게 느낀 것인데, 사람은 어쩔 수 없으면 상황을 합리화하게 된다. 나는 나이를 먹었으니까, 당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 정도는 피난기준치를 밑도니까 등의 이유로 오염지대에 사는 것을 합리화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라고 ‘안심’하는 것은 아닐 게다. 정부가 피난을 지원하지 않는데, 무작정 이사를 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정부가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연간 누적 피폭량 20밀리시버트로 정한 피난기준치를 5밀리시버트가량으로 낮추면 인구 30만명이 사는 후쿠시마시나 고리야마시가 피난 대상 지역에 속하게 된다. 그곳에 있는 어린이들만 피난시키려고 해도 엄청난 돈이 든다. 피난을 시키기보다는 나중에 건강 피해가 발생한 사람한테 배상하는 쪽이 비용이 훨씬 적게 먹힐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을 터이다. 훗날 암이 발생해도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나라가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그것은 훗날의 국가 운영자에게 떠넘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사고가 나면, 인간의 생명은 그렇게 돈으로 계산되고 만다. 지난 1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 세계회의에서 한 후쿠시마 어린이가 던진 질문이 귀를 울린다.

“우리 어린이들의 생명과 돈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잔인한 계산이 이뤄지도록 애초 길을 연 것이 잘못이다.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본격화되기 전, 전문가들은 사고가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계산했다.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실로 감당 불가능한 것임은 그때 이미 예상됐다. 그럼에도 원전 건설이 강행된 것은, 사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장담 때문이었다. 사고는 10만~10억년 가동에 한 번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엄청난 피해는 현실이 됐고, 안전 신화는 무너졌다. 새로 나온 계산 결과는 명확하다. 원전은 엑스(X)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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