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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2 19:45 수정 : 2012.03.22 21:56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권력투쟁의 자욱한 안개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개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둘러싼 중국의 치열한 고민이다

“중국에 내란이 일어났다는데….” “그럴 리가… 아닐 겁니다.”

한국 온라인에서 이른바 ‘중국 내란설’ 기사가 톱뉴스가 된 지난 20일 오후 한국에선 계속 전화가 걸려온다. 시내 중심가에 특별한 동향이 없음을 체크하고 “현재 중국 상황에서 그런 일 없을 거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다.

한국에서 중국을 보는 눈은 여전히 황제와 측근들의 비밀스러운 궁중 암투 아니면 <삼국지>의 세계이구나 싶다. 그러나 결국 이런 상황을 빚어내고 있는 중국 정치의 현실을 다시 짚어볼 수밖에 없다. 21세기,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이런 경우 기자라면 평소 알고 있던 정부 소식통이나 정부·당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확인 취재를 하는 게 원칙이다. 중국에선 외국 기자들은 물론 심지어 중국 기자들도 이에 대해 분명한 확인 취재를 할 길이 없다.

중국 정치의 거물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낙마한 뒤 전세계의 시선이 중국에 쏠리고 있지만, 이렇게 중요한 상황일수록 정부와 관영언론은 무겁게 침묵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문만 눈덩이로 커져간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19일 밤 베이징 중심가에 평소와 다른 병력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글이 올라왔고, 미국의 반중국계 신문이 이를 근거로 보시라이를 지원해온 저우융캉 상무위원이 무장경찰을 동원해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설을 보도했고, 이것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1989년 천안문 시위 진압 뒤 정치 민주화 실험이 멈춘 지점에서, 중국 정치, 특히 최고 지도부의 동향과 결정은 공식 발표가 나올 때까지 어떤 확인도 불가능한 비밀주의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국가의 주요 지도자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국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소통하는 접점이 없다.

보시라이 사건을 둘러싼 자욱한 안개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개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둘러싼 중국의 치열한 고민이다. 중국이 휘황찬란한 경제적 성공을 자랑하지만, 빈부격차가 무섭게 벌어지고, 농민과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부정부패 등 심각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가 곪아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중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시장의 부작용을 청산하고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게 신좌파였다. 2007년 충칭 서기로 부임한 보시라이는 공평했던 과거에 대한 대중의 향수를 읽어냈고 신좌파의 이론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국유기업의 수익을 사회로 돌리고,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과 복지를 제공하는 정책을 약속했다. ‘충칭 모델’은 보시라이를 만나 생명력을 얻은 듯했지만, 결국은 보시라이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 공정과 분배가 사회와 시민의 권리 강화를 통해 이뤄지지 않고, 강력한 국가와 인물이 베푸는 시혜처럼 되어버렸다. 보시라이가 ‘범죄와의 전쟁’에서 강압수사를 통해 기업가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반대파를 숙청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와 대척점에 선 개혁파(우파)들의 청사진은 최근 세계은행과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이 공동 발표한 ‘중국 2030’ 보고서에 집약돼 있다. 리커창 부총리의 지원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의 요점은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민간의 힘을 키우고,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분배와 기회를 제공하는 개혁을 긴급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강한 특권을 누리는 국유기업을 수술하는 ‘중국판 재벌개혁’을 강조하고 있고, 민영기업 발전, 노동자 임금 인상, 농민들의 토지권리 보호 등을 제안하고 있다. 중국이 이런 발전모델을 실행하려면 기존 기득권 세력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국민과 사회가 권리와 감독권을 가지게 하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밀스럽고 삼엄한 권력투쟁의 안개 속에서, 중국은 절박하게 길을 묻고 있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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