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9 19:10
수정 : 2012.04.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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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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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지문 날인 거부
투쟁해온 재일동포들,
4·11 재외국민투표에서
지문 날인 요구에 분노
1980년 9월10일, 도쿄 신주쿠 구청에 외국인 등록을 갱신하러 간 재일동포 한종석(2008년 사망)씨가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인권침해를 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지문 찍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재일 외국인이 3년마다 하는 외국인 등록 갱신 때 의무화돼 있던 지문 날인을 처벌을 무릅쓰고 거부한 것은 1955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처음이었다. 한씨는 외국인 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지문 날인 강제는 일본의 대표적인 외국인 차별이었다. 일본은 1952년 연합국의 점령에서 벗어나자마자 외국인 등록법을 시행해, 외국인에게 자신의 신원을 구청에 상세히 등록하게 했다. 또 늘 등록증을 휴대하고 경찰 등 관헌의 요구가 있으면 제시하게 했다. 위반하면 벌칙을 가했다. 1955년에는 14살(1982년 8월부터 16살) 이상 외국인에게 외국인 등록 갱신 때 왼손 집게손가락(검지)의 지문을 찍도록 강제했다. 잠재적인 범죄인 취급이었다. 당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90%가 식민지 시대에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에 왔다가 귀국하지 못한 재일 한국인이었다는 점에서, 이 제도가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분명했다.
지문 찍기를 거부한 한씨는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반대운동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지문 날인 거부자가 출국하면 재입국을 못하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탄압으로 맞섰다. 그럴수록 반대운동엔 더 불이 붙었다. 재일동포 청년들은 지문 날인 거부에 동참했고,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합류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한씨 편이었다. 기소됐던 한씨는 1989년 일본 대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결국 2000년 4월부터 외국인에 대한 강제 지문 날인 제도를 폐지했다. 9·11 테러사건이 일어난 뒤인 2007년부터, 일본은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다시 지문을 등록하게 하고 있지만, 특별영주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몰랐던 것일까? 최근 치러진 4·11 총선 재외국민투표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들에게 사실상 지문 날인을 강제해 재일동포 사회에 파문이 일었다. 선관위는 투표권자가 투표용지를 교부받았음을 확인하는 서명을 대신해, 전자지문인식기에 지문을 갖다대게 했다. 투표장엔 서명란이 있는 선거인명부가 아예 마련돼 있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문 기록은 보존하지 않고, 선거가 끝나고 모두 지운다”고 설명했지만, 지문 날인 철폐를 위해 싸워온 재일동포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것은 차별의 아픈 기억을 일깨울 뿐이었다.
교포단체 민단의 기관지인 <민단신문>이 지난 12일 보도한 것을 보면, 오사카 총영사관 투표장에서는 한 50대 남자가 지문 찍기를 거부해 결국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는 지문 대신 사인을 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필경 그는 생애 처음으로 조국의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큰 기대감을 갖고 공관을 찾아 선거인 등록을 하고, 이날 또 공관을 찾는 수고를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투표권을 끝내 포기한 것은 투표권 행사의 기쁨보다 불쾌감이 훨씬 컸기 때문일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부터 지문 날인을 해야 했던 젊은 국외부재자와 일본에 오래 산 영주자들의 반응은 크게 달랐다. ‘몇번을 망설이다 굴욕감을 억누르고 투표를 했다’는 한 일반영주자는 “내국인이 국내에서 투표를 할 때도 지문 날인을 요구하느냐”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지문 날인밖에는 방법이 과연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면, 이제라도 책임자가 나서서 사과하고 개선책을 내놓아야 할 일이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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