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2 19:07
수정 : 2012.07.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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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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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역사를 돌아보면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은 일본에 ‘족쇄’라기보단 ‘축복’이었다. 평화헌법을 빌미로 군대의 보유와 운영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은 그 비용을 온전히 경제개발에 쓸 수 있었다. 한국전쟁 특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번영시대라는 좋은 외부환경, 기술의 응용력 등이 어우러져 일본은 전후의 폐허를 딛고 1968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물론 일본은 지금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방위예산 규모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일원인 프랑스에 버금가고, 보유 군사력은 육군을 제외하면 한국에 필적한다. 핵무장의 잠재능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능력은 비핵보유국 가운데 최고다.
그런 일본이 평화헌법의 제약에서 벗어나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자위대의 운용을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무기수출 3원칙을 개정해 국제 무기 공동개발 및 수출에 참가하고, 핵무장의 족쇄를 풀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합법화하려 한다. 옛날엔 극우 인사들이나 하던 주장이 요즘은 집권 민주당 지도부 안에서도 나온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지도부를 ‘자민당 노다파’라고 비판할 정도다.
일본이 그 길로 가는 것은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해서다. 중국은 1989년부터 국방비를 해마다 두자릿수 증가율로 늘리고 있다. 올해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정부가 발표한 국방예산은 지난해보다 11.2% 늘어난 6702억위안(1064억달러)으로, 일본의 1.8배에 이른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의 실제 국방비를 발표된 것의 1.5~3배로 보고 있으니, 실제 격차는 훨씬 클 것이다. 중국이 커진 힘을 과시하려는 듯한 모습도 엿보인다. 일본은 그런 중국을 염려해, 동맹국 미국과 단단히 손을 잡고 보유 군사력을 실제 활용하는 길을 선택한 모습이다.
물론 일본의 군사력 팽창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일본의 올해 방위예산은 4조6453억엔으로 국내총생산의 1%에 조금 못 미친다. 액수는 10년 연속 감소했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예산 팽창에 대처해야 할 재정여건으로 보면, 일본이 앞으로 방위비를 크게 늘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일본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현재 중-일 무역 규모는 미-일 무역 규모의 갑절이다. 거대시장 중국과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일본의 경제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일본은 지금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에게도 일본과 같은 길을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양국의 움직임에선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재편해 삼각 군사동맹으로 만들자는 의도가 짙게 묻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더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분단을 해결하는 데도 중국의 협력이 절실하다. 군사정보보호협정 등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경계하는 것은 일본이 위안부, 독도 문제에서 괘씸한 짓을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재앙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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