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7 19:20
수정 : 2013.03.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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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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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멀리서 벗이 찾아왔다.
중국 남동쪽 바닷가 마을 우칸에서 온 친구들이다. 2011년 말 이곳 사람들은 당 간부들이 주민들의 집단소유 토지를 몰래 매각해 거액을 챙긴 사실을 알아내고 시위에 나섰다. 당 간부들을 내쫓고 한달간 무장경찰과 대치한 끝에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냈고 민주적 선거로 지도부도 뽑았다.
그때 ‘우칸의 작은 혁명’을 취재하며 알게 된 마을 젊은이들을 다시 만나 반가웠지만, 조금은 우울한 소식도 듣게 되었다. 몰래 팔려나간 마을토지 1만2000무 가운데 지금까지 돌려받은 것은 4000무뿐이다. 기대를 품고 시위에 나섰던 주민들의 실망은 크다.
시위 당시 마을의 젊은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장젠싱은 “우칸 사람들은 용감했지만 사회 전반의 상황이 함께 나아지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시위에 나섰던 것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일 이후 나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세상을 넓고 깊게 알게 됐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한 지난 4년 동안, 이처럼 중국 곳곳에서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국인들로부터 외부에 있을 땐 보지 못하던 중국의 진면목을 배웠다. 광둥성의 ‘세계의 공장’ 지대에서 만난 농촌 출신 노동자들은 전태일과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베이징 외곽 허름한 공장지대에는 ‘노동자의 집’이란 공동체와 박물관,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운 노동운동가들이 있다. 농촌활동에 뛰어드는 많은 대학생들이 있고, 특권층에 대한 감시망을 강화하고 있는 6억의 누리꾼(네티즌)이 있다.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은 이런 변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듯 보인다. “부패 관료를 처벌할 때 호랑이와 파리를 함께 잡아야 한다”며 고위직의 부패도 봐주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냈고,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개혁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공산당 내부 회의에서 소련 해체의 교훈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도부는 민생 개선, 복지 확대, 소득분배 개선의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중국 학자는 이런 모습을 서구 민주의 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순자>의 구절로 상징되는, ‘민(民)의 목소리가 천명(天命)’이라는 중국 전통의 유산이 지도자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백성의 목소리를 두려워할 줄 알 때 사회에 희망이 생긴다. 중국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를 깨는 개혁은 쉽지 않겠지만, 지도자들이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국민들의 압력은 중국의 미래에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물론 국민의 목소리가 인터넷을 넘어,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중국 민주주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냉전시기 내내 만날 수 없다가 한-중 수교로 다시 교류하게 된 중국인들은 우리에겐 멀리서 다시 찾아온 벗이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편견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이란 이 복잡한 대상을 취재하는 것은 항상 버거운 난제였다. 관심과 애정 어린 비판으로 그 길을 함께해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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