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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1 19:12 수정 : 2013.03.21 19:14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지지하는 사람들의 열광적 환호와 감동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울분에 찬 절망과 안타까움도 없었다. 10년을 모셔온 ‘주군’의 당선에 “설레어 밤새 한눈도 붙일 수 없었다”는 측근도 “‘힐링’을 하려고 눈 내린 산을 올랐다”는 이도 없었다.

운 좋게 3개월 새 한국의 대선과 중국의 지도부 선출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에게 중국의 정치 이벤트는 무척이나 열적은 풍경이었다.

중국 지도부 교체는 마치 예고된 영화처럼 조용히 ‘상영’됐다. 향후 10년 거대 중국을 이끌 시진핑 주석은 14일 3000명가량의 전국인민대표(어림잡아 한명당 46만 인민의 뜻을 대리했다)의 2시간여에 걸친 인민대회당 투표 끝에 반대 1표, 기권 3표의 99.86% 지지율로 당선됐다. 1954년 마오쩌둥의 득표와 비견되는 기록이었다.

시 주석은 당선이 선포되자 단상 중앙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옆자리에 있던 전임 후진타오 주석의 손을 맞잡았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평온하기는 베이징 시내도 마찬가지였다. 정월 대보름 밤, 길거리와 공터, 아파트 주차장을 가리지 않고 베이징의 뿌연 밤하늘을 가르던 그 흔한 폭죽도 없었다. 텔레비전과 신문들은 10년 만의 세대교체를 화려하게 보도했지만 시민들에게 이날은 명절도 휴일도 아닌 그저 3월 어느 목요일 밤이었다.

한국과 중국에서 사뭇 다르게 선출된 두 지도자의 말은 어금버금했다. “중국의 꿈(中國夢)과 중국 인민 개개인의 꿈은 결코 다르지 않으며 인민 모두가 재능을 발휘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말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간판 구호와 무척이나 닮았다. 법치를 강조하며 “좀더 공평하게 발전의 성과를 나누겠다”는 시 주석의 말도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박 대통령의 말과 비슷했다.

다만,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공약들은 침묵과 말 바꾸기 논란 속에 흐릿해졌지만, 시 주석은 쉴새없이 반부패와 중국의 꿈을 주입한다. 근엄하고 신중한 지도자상에 익숙한 중국 정가에선 가는 곳마다 ‘주요지침’을 언급하는 그를 향해 “저렇게 해도 되나”는 이야기까지 돈다고 한다. 중국 인민들의 기대치는 높다. 특히 젊은 시절, 벽지인 산시성 량자허에서 토굴생활을 하다 탈출을 감행하기도 한 7년의 하방 경험은 호소력을 발휘한다. 한 베이징 시민은 “시진핑은 우리가 쓰는 쉬운 말로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한다.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 베이징대 교수도 “시진핑은 배경이 든든하다. 한다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갓 각각 5년과 10년의 임기를 시작한 두 지도자의 앞길은 미리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미 정·관·재계의 강고한 기득권을 지닌 아군에 둘러싸인 시 주석의 개혁 의지는 중간 좌표를 찍기가 난감할 수 있다. 공산당이 법 위에 있는 일당 통치 체제에서 기준을 잡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중국의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이 말보다 법치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48.1%의 반대를 안고 당선된 박 대통령은 외려 시끄러운 반대와 우려를 나침반 삼아 스스로 흔들리는 원칙과 신뢰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의 법치와 박근혜의 원칙. 역설적이게도 출발점에 선 두 지도자에겐 스스로 가장 강조해 온 구호가 가장 헐거워 보인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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