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11 19:07
수정 : 2013.04.1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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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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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가방이든 검은 가방이든 그(펑리위안)가 든 가방이면 된다.”
중국의 한 누리꾼은 펑리위안(51) 열풍을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끌어 비유했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있지만 중국 언론들은 요즘 ‘제1부인’(第一婦人) 펑리위안에 열중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아프리카 순방에 이어 8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끝난 보아오포럼까지 펑의 일거수일투족은 내내 신문과 인터넷에서 중계방송됐다. 펑이 든 가방과 시계, 개량 치파오(중국 원피스)뿐 아니라 러시아 고아원 방문과 음악원 방문에서 보여준 제1부인으로서의 외교활동도 주목받았다. 당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언론들은 쑨원의 부인 쑹칭링 이후 국력에 걸맞은 퍼스트레이디가 나타났다며 이게 진정한 중국의 ‘소프트 파워’라고 내세웠다. 정말 펑의 등장이 그간 수면 아래 빙산처럼 가려져 있던 중국 소프트 파워의 일각을 드러내 보여준 것일까?
‘제1부인’ 열풍 속에 소소하게 삐져나온 소식들을 살펴본다.
신드롬이 한창이던 3월 말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계엄군 앞에서 위문공연을 한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이 사진이 실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계정은 바로 삭제됐다. 사진은 펑이 ‘제도권 인사’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켰다. 펑을 ‘국모’라고 지칭한 웨이보 팬클럽은 돌연 폐쇄됐다. 사이트 운영자는 국모라는 명칭이 당국의 눈에 거슬린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중국 소프트 파워의 전진기지인 공자학원이 외국에서 한파를 맞았다는 소식도 눈에 띈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의 규정에 따라 파룬궁 등 불온 단체 소속자는 채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캐나다 한 대학은 이 규정이 인권 자유를 침해한다며 올 여름학기 개강을 허가하지 않았다. 공자학원은 세계 100여개국에서 400개 이상이 운영되는 중국 문화·언어 교육 기관이다. 3월 초엔 ‘녹슬지 않는 못이 되어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기를 남기고 22살에 세상을 떠난 레이펑 50주기 추모 행사가 당국의 대대적인 선전에도 별 반향 없이 끝났다. 그를 기린 영화들은 일부 지역에선 단 한 표도 팔리지 않아 흥행에 참패했다.
이 소식들을 관통하는 것은 관제다. 관제는 넘치지만 자유는 보이지 않는다. ‘풀뿌리’ 소프트 파워는 자유에서 싹튼다. 관제라는 아르고스(그리스 신화에서 100개의 눈이 있는 괴물)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자유가 깃들 여지는 없다. 펑리위안으로 회자된 중국 소프트 파워 이야기가 어딘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화주의 성향이 짙은 <환구시보>는 최근 사설에서 “중국의 부상에 세계가 점점 더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나라가 발전하면 이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인민·혁명 등 10개의 단어에 애증을 담아 중국의 사회상을 묘사한 소설가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책을 낸 뒤 ‘열한 번째 단어에 관해 쓰게 된다면 어떤 단어를 택하겠느냐’는 물음에 서슴없이 “자유요”라고 답했다. 티끌만큼의 검열도 거부했던 시인 김수영도 “모든 창작 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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