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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8 19:34 수정 : 2013.04.18 19:34

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한테서,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자주 들었다.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국회의 회의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한국인은 그 말에 맞장구를 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일 아베 신조 총리를 앞에 두고, 민주당 정권에서 경제산업상을 지낸 에다노 유키오 의원이 논전을 벌이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물가가 떨어지니까 기다리는 게 득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수입이 늘어난다는 기대와, 10년이나 15년 뒤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안심을 할 수 있는 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아베노믹스는 상상 이상의 해를 국민에게 안겨줄 것입니다.”

장기 저성장 국면이라고는 하지만, 일본 경제는 2002년 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꽤 긴 기간에 걸쳐 경기상승 국면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국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1377만명에서 1760만명까지 수직으로 증가했다. 노동자의 평균 급여는 연 460만엔에서 430만엔으로 지속 감소했다. 경기상승 국면의 막바지에 집권한 아베 내각은 이런 추세를 전혀 돌려놓지 못했으며, 지금의 아베노믹스도 이에 대한 해법이 없음을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조소하듯 대답했다.

“당신처럼 생각하니까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자민당 의원들로 가득 찬 중의원 회의장에 박수가 쏟아졌다. 일본은 지금 아베노믹스의 초기 성과에 꽤 고무돼 있다. 이미 40%나 뛰어 1만3000엔대인 닛케이지수가 2만엔까지 오를 것이란 말도 공공연히 나온다. 채권값은 물론이고, 골프장 회원권 값도 뛴다. 자산가격 상승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호전시킬 것이다. 실물 경기 지표도 실제 좋아지고 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일본 인구는 지난해 28만명이나 감소했고, 65살 이상 고령자가 3000만명을 돌파했다. 인구 고령화는 정부 재정부담을 키운다. 고령자의 자기 부담을 늘리면 일본 경제의 기둥인 내수 소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노동자 정년을 사실상 65살까지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정년 연장의 대가로 임금이 줄어드니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에다노의 말대로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보통 가계의 소득이 늘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아베 정부는 수출기업들한테 임금을 올려주라고 요청할 뿐, 딱히 이를 유도할 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쪼그라든 일본 민주당이지만, 인기 높은 아베노믹스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경제철학을 지키며,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러나 철학이 담긴 경제정책은 여전히 뿌옇다. 경기대책이라 할 수 있는 추가경정예산은 액수가 19조원이나 되지만 세입결손 보전이 12조원에 이르고, 세출 가운데도 부동산 대책 지원용이 많다. 주택 구입 촉진 대책이 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처럼 돼 있다.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득이 실보다 클 거란 보장이 없다. 다른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야당도 그저 추경 세부 내역을 따질 뿐이다. 세계 경제는 장기불황 조짐을 보이는데, 다들 태평해 보인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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