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3 19:07
수정 : 2013.05.2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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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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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대구에서 할머니댁이 있는 김천을 자주 오갔다. 지금은 없어진 비둘기호를 타면 늘 낙동강 지류 금호강을 건넜다. 차창 아래 강물은 새까맸다. 물가는 시꺼먼 오니펄이었다. 금호강은 뒤에 꼭 ‘똥물’이란 꼬리표를 달고 한 묶음으로 불렸다. 기차가 금호강 철교를 건너면 이내 대구 외곽의 섬유·염색 공장 굴뚝이 보였다. 그러면 승객들은 짐을 챙기곤 “이제 대구 도착했다”고 했다. 금호강은 당시 대구로 들어가는 이정표이자 관문이었다.
베이징에도 짧은 봄이 지나고 있다.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는 스모그와 먼지로 온통 희뿌연 회색이던 이 도시에도 봄은 화사한 색을 입혔다. 시내 곳곳을 휘감는 수로 둔치엔 수양버들이 연둣빛 가지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둔치 아래를 흐르는 물빛은 산책하는 외지인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건조한 기후 탓에 가뜩이나 메마른 하천의 물은 아직도 겨울빛이다. 먼지처럼 희끄무레하고 녹물처럼 싯누렇다. 원경과 근경은 사뭇 달랐다. 중국인들은 오염된 강물을 곧잘 ‘간장물’이라고 한다. 갑자기 금호강이 생각난 것은 이 때문이다. 금호강의 기억 탓에 베이징의 수로는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사실 수질 오염을 비롯한 중국의 환경 오염은 중국 정부가 알면서도 어느 정도는 방치해두는 면이 있다. 오염은 일정 부분 발전을 위해 치러야 할 단기간의 대가 내지는 성장통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다. “더는 개발을 하느라 환경이 희생되지 않게 하겠다”는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말은 그가 강조하는 “신형 도시화 성장”이란 말과 모순되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얼마 전 만난 중국인 친구 가오는 “중국의 서민과 공무원에겐 각각의 신앙이 있다”고 했다. 그는 “서민의 신앙은 돈이고, 공무원의 신앙은 지디피(GDP) 성장률”이라고 했다. 중앙정부가 해마다 각 지방정부의 지디피 성장률이라는 숫자로 공무원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승진의 잣대로 삼는 탓에 환경 문제는 한참 뒷전이라고 자조했다.
환경에 대한 갈증은 가오만의 생각이 아니다. 지난 15일 상하이시 당국은 쑹장(松江) 근처에 지으려던 리튬전지 공장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한때 신종 조류인플루엔자의 원인으로 알려졌던 1만여마리의 돼지 사체가 이 강에 떠오른 사태를 겪은 주민들이 나서 연일 반대 집회를 벌인 뒤 얻어낸 성과다. 여론조사도 이런 중국 인민의 바람을 보여준다. 지난 8일 상하이 교통대학이 전국 34개 도시 34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는 환경 보호가 경제 발전보다 중요하다고 했고, 67%는 주변 수질 개선을 위한 세금을 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제대로 환경 보호를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공기는 이렇게 숨쉬기 어려울 만큼 나쁘고, 물도 믿고 마실 수가 없다. 백성들은 어디 믿을 데가 없다”며 쓴웃음을 짓는 가오에게 “한국도 예전에는 똑같았다. 중국의 공기와 수질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가오는 반쯤은 회의적이고 반쯤은 희망적인 표정으로 “정말 그랬느냐? 정말 그렇게 될까?” 하고 되물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라고 자칭하며 2020년까지 국민 다수가 골고루 먹고살 만한 샤오캉(小康)사회 건설을 목표로 삼아 ‘발전’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중국 사회가 당장 환경 쪽으로 핸들을 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중국 도시 주변의 강들이 버텨줬으면 싶다. 똥물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금호강처럼 생명을 이어가길 바란다. 그땐 가오도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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