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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7 19:00 수정 : 2013.06.27 19:00

박현 워싱턴 특파원

요즘 워싱턴에서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세미나에 참석하면 자주 듣는 레퍼토리가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난 미국의 최고위급이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방청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로드먼에 대해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코트의 악동’이라는 그의 별명이 잘 말해준다.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미국 주류사회가 받아들이기 껄끄러워하는 자유분방한 악동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래서 웃음 속엔 조롱 비슷한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로드먼이 올해 2월 방북 이후 미국 언론에 등장해 보인 열정에 호감이 갔다. 그는 김정은 제1비서를 친구라고 부르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열심히 전했다. 지난 3월 한 앵커가 북한의 위협적 언행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방북한 것을 두고 질책성 질문들을 퍼붓자,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드먼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그의 행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북한의 ‘선전전’에 이용당했다는 분위기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관계 정상화를 이루는 것을 대미 외교의 목표로 삼아 왔다. 큰 틀에서 보면 김 제1비서가 로드먼을 면담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사의 초청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기대했던 효과를 냈는지 의문이 든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슷한 시기 방북했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김 제1비서를 만나지 못한 것과 비교를 하곤 한다. 대중적 인지도와 명망을 동시에 갖춘 인물들은 만나지 않으면서 로드먼을 만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국방위원회가 중대담화를 통해 북-미 고위급 대화를 제안한 것도 곱씹을 대목이 있다. 과거에 북-미 대화가 이뤄질 때는 사전에 물밑에서 정지 작업을 거쳤다. 이른바 ‘뉴욕채널’ 등을 통해 의제 등이 논의된 뒤에 공개가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쪽에서는 곧바로 북한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과거의 협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뭔가 약속을 받아내려는 욕구가 강하다. 협상에 나섰다가 실패하게 되면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과거에 핵을 가지겠다는 확실한 의도를 가지지 않았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미국 관료 중에 적극 나서려고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채널의 상징적 인물로 불리는 한성렬 주유엔 북한 차석대사가 조만간 귀국하는 것도 북한의 대미 외교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협상파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협상파를 상징하는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미나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대화에 나서지 않는 것을 비판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만난 그는 대화와 압박이라는 투 트랙 중 압박 쪽을 더 강조하고 있었다. 최근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워싱턴포럼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북한의 대미 외교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미국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선 좀더 섬세하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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