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4 19:07
수정 : 2013.07.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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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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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는 흔히 불가근불가원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서로를 어느 정도 경계하고 만난다. 하지만 종종 친분과 신뢰가 쌓이고 취재원이 할 말이 꽉 찼을 때는 속내가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기사화를 전제하지 않는 ‘오프 더 레코드’라는 조건이 붙게 마련이다.
그러나 간혹 약속은 깨지곤 한다. 취재원의 말이 본의 아니게 유통될 때가 있다. 그중 흔한 것이 이른바 ‘증권가 찌라시’라 불리는 정보지를 통한 정보 누출이다. 서로가 나눈 말이 때론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녹취록 수준으로 알려지거나, 때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왜곡돼 돌고 돈다. 간밤의 식사 자리 대화가 다음날 아침에 알려질 때도 있다. 기사화하지 않는 조건으로 나눈 말들인 까닭에 말들이 밖으로 유통되는 순간 취재원과 기자의 사이의 신뢰는 단숨에 불신으로 바뀐다. 취재원은 해당 기자와의 식사 자리를 꺼리고 피하게 되고 뒤론 속내는 걸어 잠근다. “아니 당신을 믿고 오프를 걸고 한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 나돌 수 있느냐. 이래서야 어떻게 믿고 이야기를 하겠느냐.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원망과 하소연이 뒤따른다. 기자도 미안함과 불편함은 마찬가지여서 한번 깨진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국내가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문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끝났다. 중국은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박 대통령을 맞았다. 중국으로선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일본 아베 내각의 우경화, 그리고 내내 ‘정상 국가’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던 북한의 ‘일탈’ 등으로 동아시아 전략을 세우는 데 한국의 필요성을 절감한 시기였다. 중국 쪽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박 대통령의 방중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때문이다. 중국 언론들은 “한국을 동북아 외교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며 “북한은 이미 3차 핵실험으로 중국을 실망시켰지만, 한국과 우호를 다지면 중국의 화평굴기를 압박하는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중국이 한국을 자기네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적기에 이뤄진 셈이다. 청와대 쪽은 “양국 정상이 진솔하게 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 의문이 인다. 과연 중국은 얼마나 자신들의 속내를 이야기했을까. 중국은 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 내내 벌어진 국정원의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논란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보수 언론들이 남북한 두 정상이 나눈 협상과 회담 회의록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법원의 경매 부동산 매각 공고처럼 전면을 털어 게재한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대화록 내용을 토대로 대화 상대인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의 협상 태도와 스타일까지 넘겨짚은 기사들을 못 보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 대화록은 청와대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이었다. 지난해 대선 때 국정원의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이 드러나면서 잇단 시국선언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과 정부 여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물타기용’으로 대화록을 공개했다는 한국 내 비판 여론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중국이 얼마나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문제에 관해 고민과 속내를 털어내 보였을까. 혹시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뢰 외교’에 일말의 모순을 느끼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중국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정보 수집을 폭로한 스노든 사태로 보안에 민감한 상태였다. 한-중 정상회담과 국정원의 남북 정상회담 문건 공개를 보며 든 상념들이 부디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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