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8 19:09
수정 : 2013.07.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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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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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워싱턴 특파원들의 모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제 중 하나는 도청 문제다. 신문에 기사를 쓰기 위한 게 아니라, 특파원들이 일상생활에서 미국 정보기관들로부터 도청을 당하는지 여부를 서로들 궁금해한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정보기관들이 워싱턴에 있는 외국 대사관들을 도청해 왔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특파원들도 그 대상이 아닐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특파원들은 외교관은 아니지만 외교 관련 정보들을 갖고 있으니 정보에 목말라하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목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까지 의심이 생긴다.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정부에 고객정보를 제공해온 것으로 드러난 전화회사가 경쟁사보다 훨씬 싼 가격을 제시하며 가입을 권유했던 것이 혹시 나를 감시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며 찾았던 전화가 혹시 나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개인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해주는 것으로 정평이 난 구글마저 미국 정부에 협조를 하는 마당에 이메일은 과연 안심해도 되는 걸까. 가끔 집 주변에 주차돼 있던 뒷좌석이 꽉 막힌 큼지막한 차가 혹시 도청을 위한 차량은 아닐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것들에 편집증적인 집착을 하게 되면 사회부 기자 초년 시절 제보 전화로 가끔 받았던 ‘내 귀에 도청장치가 돼 있다’는 유의 정신착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그런 집착은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그지없다.
나의 걱정은 사실일 수도, 기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노든의 폭로로 분명해진 것은 미국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수백만명의 미국 일반 시민들도 일상생활을 감시당했다는 점이다.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나라.’ 미국은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 왔다. 이는 미국은 인류를 이끌고 구원할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선민적 역사관과 세계관을 뜻한다. 특히 미국은 1776년 독립선언 때부터 ‘자유’를 전파할 사명을 띠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왔다. 미국 외교 정책의 근간이 되는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가 나오는 배경이다. 모든 나라들의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근본적 동기는 돈과 생존, 즉 이익과 안보인데, 미국은 여기에다 이런 우월의식을 추가했다. 이런 외교 이념은 공화·민주 양당에 공통적이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내세웠던 게 이것이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에서 이런 예외성을 자주 언급한다.
스노든의 폭로는 미국의 이런 자부심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일로 여러 차례 체면을 구겼다. 그는 스노든이 타고 이동할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스노든을 태운 것으로 의심받은 볼리비아 대통령의 전용기는 유럽 4개국의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고 오스트리아에 강제로 착륙해야 했다. 미국은 여기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누가 이를 믿겠는가. 또 권위주의적 행태로 미국의 비판 대상이었던 ‘케이지비’(KGB)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스노든이 미국에 더 이상 해를 입히지 않으면 망명을 받아주겠다며 짐짓 미국을 걱정해주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정보기관의 전방위 감시 실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잘못했다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집착이 이런 불감증을 낳은 것일까. 이제 미국은 스스로 붙인 ‘예외적인 나라’라는 타이틀을 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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