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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23 18:33 수정 : 2015.04.23 18:33

“역사를 단순히 선악의 이원론으로 정리하는 게 가능할까. 당시(대학 시절인 1970년대 중반) 나에겐 그것이 소박한 의문이었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자서전 <아름다운 나라에>)

26일부터 시작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그의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29일 미국 상·하원 연설과 8월 내놓는다는 아베 담화의 원형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 지난 22일 반둥회의 60주년 연설에서도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라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이런 역사 인식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역사수정주의자일까? 이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2006년 1차 집권을 앞두고 펴낸 자서전 성격의 저서인 <아름다운 나라에>를 보면, 일본의 지난 침략의 역사에 대한 그 나름의 견해가 솔직히 기술돼 있다. 책 속에서 그는 “열강이 아프리카, 아시아의 식민지를 기득권화하는 중에 언론을 포함한 민의는 (전쟁을 수행한) 군부를 지지했던 것은 아닐까. 역사라는 것은 선악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게 아니다”라는 인식을 내비쳤다. 당시 군부의 행동은 ‘침략’이 아니며 역사적 상황을 생각할 때 일본만 무조건 ‘악’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그는 이런 인식에 기초해 2012년 8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며 <산케이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3대 역사 관련 담화인 1982년 미야자와 담화(교과서 기술에 주변국 배려), 1993년 고노 담화(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 인정), 1995년 무라야마 담화(침략과 식민지배 사죄)를 “모두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2012년 12월 총리직에 오른 뒤 초·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넣어 미야자와 담화를 훼손했고, 지난해 2월엔 고노 담화를 검증해 큰 상처를 남겼으며, 오는 8월 아베 담화에선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인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의 표현을 제거할 전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2013년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침략엔 정해진 정의가 없다”는 인식을 밝힐 수 있었고, 그해 12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지난해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선 “식민지배와 침략 부분의 계승을 명확하게 말해 달라”는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의원(현 대표)의 네 차례에 걸친 집요한 요구에도 끝내 자신의 입으론 이 부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자, 여기까진 우리 모두가 아는 바다. 이런 역사수정주의자를 상대로 우린 어떤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할까.

말이 안 통해 보이는 아베 총리도 뚫지 못하는 벽이 있다. 아베 총리는 어찌됐든 현재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달 초 발표된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고노 담화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 총리도 국익을 위해선 마지못해 하는 티를 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기도 한다는 것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아베 총리의 이 같은 ‘상대적인 유연함’은 한국 외교에 적잖은 고민을 남기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의 중-일 정상회담이 열린 22일 당일엔 회담 성사를 위해 일본 각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한명도 참배하지 않았다. 반둥회의 60돌 기념 연설엔 교묘하게 ‘침략’이란 표현도 넣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런 점들을 두루 생각해 5개월 만에 정상회담에 임했을 것이다. 한국은 역사 문제에 대해선 중국과 한 팀이 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고립무원이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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