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16 18:44
수정 : 2012.04.18 11:12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MB정부가 일방적 홍보할때
미 제약사 “가장 모범적 협정”
이쯤 되면 거의 괴담이다. 국민 공감을 사야겠다는 다급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심하다. 대놓고 미국 업계 홍보맨 노릇이나 하겠다는 것인가.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맞춰 ‘믿거나 말거나’ 식 홍보물을 쏟아내고 있다. 만화로 그려진 한 지하철광고에선 ‘우리 딸’이 이렇게 달라진다고 썼다. ‘레몬, 오렌지, 치즈 등을 착한 가격으로…피부 좋아지고, 다이어트 하고~’, ‘보다 싸진 화장품, 의류, 가방 등으로 마음껏 멋내고~’, ‘외국인 투자증대로 일자리가 늘어 취업에 성공하고….’ 취업준비생 딸을 둔 가계의 관점으로 협정의 효과를 설명하는 광고이다. 국민 세금을 들여 이런 광고를 버젓이 내는 용기가 놀랍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협정 발효에 따른 이해득실은 엇갈리게 마련이다. 광고처럼 값싼 미국산 과일 등에 즐거워할 ‘우리 딸’이 있는 반면에, 부모님의 과수농사가 타격을 받아 시름에 잠길 또다른 ‘우리 딸’도 있다. 한쪽의 혜택과 효과만 부각시키고 다른 쪽의 피해와 부작용을 감추면 과장광고다.
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눈앞이 아니라 길게 멀리 내다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한-미 에프티에이의 추진 근거는 억지투성이다. 대표적인 예가 소비자후생이 커진다는 주장이다. 물가가 내려가고 소비의 질이 높아지는 게 소비자후생이다. 개방과 자유화로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경쟁을 촉진하면, 즉 에프티에이를 시행하면 소비자후생은 저절로 커진다는 게 정부와 찬성론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의 실증적 근거는 아주 얕다. 제대로 따지면 오히려 정부의 주장과 반대의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한-미 에프티에이에선 의료서비스 분야가 그렇다. 합의 내용은 미국식 시장자유주의에 가장 걸맞은 제도들을 담고 있다. 정부의 약값 결정에 대해 다국적 제약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독립적 검토기구’가 협의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신약 특허권자 동의 없이는 값싼 복제약의 시판을 승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허가-특허 연계제’ 등을 들 수 있다. 협정 내용에 대해 존 카스텔라니 미 제약협회 회장은 “미국이 맺은 역대 협정 가운데 한국 모델이 가장 모범적”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독특한 미국식 제도가 누구에게 가장 모범적이며 누가 큰 혜택을 보게 되는 걸까? 답은 뻔하다. 미국의 거대 제약사와 의료기기업체, 민영의료보험회사, 영리병원 투자자한테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새로운 큰 시장을 열었다. 국내 소비자의 후생은 어떻게 될까? 답은 ‘떨어진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낸 ‘보건의료 현황 보고서’에서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보건의료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 보면, 미국은 17.4%로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미국 국민의 약값, 병원비, 보험료 부담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국민의료비 부담은 큰데도 기대수명이나 전염성질환 사망자수, 유아사망률 등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적 성과를 비교해 보면 미국은 평균 이하다. 소비자후생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한 국민의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경제의 전체 파이가 커지느냐? 여러 경제전문가들은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서 200쯤 늘어나고 그렇지 않는 분야에선 100쯤 줄어들더라도 전체 파이는 100만큼 커진다. ‘국익 증대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둘째 질문. 그 파이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느냐? 또다른 여러 경제전문가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99%의 국민 주머니에서 100을 줄여 1%의 부자 곳간에 200을 몰아주는 게임으로 본다. 그런데 정부는 한쪽 질문에만 답한다. 극소수 계층에게 돌아갈 혜택은 턱없이 부풀리고, 전체 국민에게 떠넘길 비용은 감추면서.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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