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23 20:55
수정 : 2012.04.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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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사회부 24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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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원래 꽃보다 아름다웠지만 10년째 사회부를 지키며 꽃처럼 시들어가고 있는 유선희 기자예요.(제발, 진실을 밝히겠다며 제 증명사진 구글링하거나 싸이월드 해킹하진 마세요.)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검-경 밥그릇 싸움’ 따위의 제목들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네요. 대체 같은 업종(수사기관)에 종사하는 검경은 왜 자꾸 싸울까요? 저는 오늘 검경이 싸우는 이유와 그 긴 싸움의 역사를 말씀드릴게요.
사실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1954년부터 검경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요. 왜냐고요? 경찰이 나쁜 놈을 잡았다 해도 그놈을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할 권한은 검사에게만 있고(기소독점권), 검사는 경찰에게 “이렇게 저렇게 수사하라”고 명령도 할 수 있어요(수사지휘권). 물론 검찰은 중요 사건을 단독으로 수사할 수도 있죠(수사권).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다고 느끼는 경찰에게 검경 관계는 마치 학교 1진-2진 관계 같았어요. 경찰은 “내가 니(검찰) 시다바리냐”며 빵셔틀 못지않은 ‘수사셔틀’에 저항하는 하극상(?)을 꿈꾸게 됐죠.
막강 권력을 가진 검찰도 때로 청와대 눈치를 보며 편파적인 수사결과를 내놓곤 했어요. 검찰이 1진이면, 청와대는 ‘짱’이니까요. 국민들은 ‘정치검찰·검새’라고 비판하며 누가 검찰을 견제하냐고 걱정했죠.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우리가 맞짱 뜨겠다”며 수사권 독립 투쟁에 나섰어요.
이렇게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됐죠. 2005년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범죄와의 전쟁’도 아닌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어요.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송광수 검찰총장이 퇴임사에서 “검찰은 사회 부패를 척결하는 소금과 같다”고 하자, 허 청장이 “소금은 하나(검찰)만 있으면 안 된다. 굵은소금, 가는소금, 맛소금(경찰)도 있어야 한다”고 비꼰 일화는 유명해요. 하지만 이때는 서로 감정싸움만 벌이다 흐지부지됐죠.
본격적인 ‘1차 맞짱’은 지난해 5월 형사소송법 개정을 앞두고 시작돼요. 조현오 경찰청장은 전국 지방청장에게 “직을 건다는 자세로 임하라”며 ‘결전’을 명하죠. 그러자 검찰은 “조직을 위해 ‘직’을 거는 건 조폭이나 하는 짓”이라며 비아냥댔어요. 하지만 그해 6월 국회는 ‘수사권 조정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절충안을 통과시켜요. 경찰의 수사권 독립 여지를 남겨둔 셈이니 경찰의 승리였죠. 뜻밖의 패배에 검사들은 항의하며 줄사표를 냈고, 김준규 검찰총장은 책임추궁에 떠밀려 옷을 벗었어요.
‘2차 맞짱’은 대통령령 제정을 두고 벌어졌죠. 독립적 수사권을 명시하는 데 사활을 건 경찰은 “더이상 수사셔틀은 안 한다”며 1만5000명이 수사직을 반납하는 실력행사에 나섰어요. 그러나 레임덕이 시작되니 청와대도 검찰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지난해 12월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한다’는 원칙을 담은 대통령령이 확정돼요. 경찰은 1승1무 뒤 검찰에 한판패를 당한 거죠.
‘전면전’은 검찰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 경찰은 “검찰이 넘긴 사건은 수사 않겠다”거나 “재지휘를 해달라”며 검찰 약을 살살 올리는 ‘게릴라전’을 펼쳤어요. 최근 밀양서 경찰관이 “사건을 축소하도록 지시하고 폭언을 했다”며 검사를 고소한 사건은 검경 갈등의 클라이맥스(정점)였죠. 경찰이 ‘본때를 보이겠다’며 경찰청 차원의 수사에 돌입하자, 검찰은 “사건을 관할지(사건이 일어난 곳 또는 피고소인의 거주지) 경찰서로 보내라”는 이송지휘로 반격했죠. 결국 경찰은 법전을 들이대는 검찰에 무릎을 꿇으며 체면을 구겼어요.
이걸로 끝이 아니에요. 김재호 판사가 ‘부인인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비방한 누리꾼을 기소해달라’고 박은정 검사에게 청탁을 했다는 사건을 본격 수사하며 경찰은 다시 역습 기회를 잡아요. 현직 판검사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며 신났던 경찰은 이들이 출석은커녕 전화조차 안 받자 ‘특권의식’이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죠.
이렇게 긴 다툼에도 검경 갈등은 여전히 진행중이에요. 그런데 검경이 알고나 있을까요? 힘없는 대중들(일반학생)에겐 검찰(1진)이든 경찰(2진)이든 모두 권력기관(폭력서클)일 뿐이고, 그들의 다툼 역시 패싸움으로밖엔 안 보인다는 걸요.
유선희 사회부 24시팀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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