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30 18:56
수정 : 2012.04.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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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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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24일 한 측근이 제 앞에서 아는 척을 하더군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는데 말이야~” <한겨레> 1면 기사를 읽고 하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 기사 누가 썼는지 혹시 아나?” 잠시 당황하던 측근 왈 “혹시…?” 네, 접니다. 그런데 이 측근, 궁금한 건 많은데 해소가 안 됐다는군요. 독자님들이 원하신다면야, 양대 국제금융기구인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총재 선출과정과 지구촌 파워게임의 현주소까지 일필휘지 준비됐습니다.
몸풀기 퀴즈부터 하나 풀어볼까요? 유진 마이어~로버트 졸릭까지 역대 세계은행 총재 11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미국시민’인데, 쉬웠나요? 그럼 카미유 귀트~크리스틴 라가르드까지 국제통화기금 총재 11명의 공통점은 뭘까요? 이번엔 유럽인입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에서는 세계 통화와 무역의 안정을 위해 세계은행(1946)과 국제통화기금(1945)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두곳 모두 187개 회원국이 있는데, 다른 나라들은 뭐 하고 세계은행에서는 미국만, 국제통화기금에서는 유럽만 총재를 ‘독식’하고 있는 걸까요? 경제규모와 출자액수에 따른 지분율, 이에 비례해서 가중한 이사회의 투표권 비율이 ‘비결’입니다. 세계은행은 유럽의 양보로 미국이, 국제통화기금은 미국의 지지로 유럽이 총재를 맡는 ‘짬짜미’와 ‘묵계’는 기본입니다.
세계은행 총재를 선출하는 이사회에는 미국(투표권 비율 15.61%)·영국(4.35%)·독일(4.87%)·프랑스(4.35%)·일본(9.34%) 등 5대 출자국이 지명한 5명의 이사가 있습니다. 나머지 회원국은 20개 그룹을 구성해 그룹당 1명씩 20명의 이사를 선출합니다. 합이 25명. 각 그룹이 총재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 투표로 선출될 수 있습니다만, 매번 미국이 총재를 지명해왔고 이사회가 거부한 적은 없습니다.
브라질과 중국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서방 중심의 지배구조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긴 합니다. 미국도 이를 의식해 백인이 아닌 아시아계 이민 1.5세대 김 총장을 선택했습니다. 게다가 말로만 비판하던 소외 그룹들이 직접 후보를 지명하며 ‘행동’에 나서면서 김 총장은 최초로 경선도 치러야 합니다. 이사회는 김용 총장,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컬럼비아대 교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나이지라아 재무장관을 면접한 뒤 4월 중 신임총재를 뽑습니다. 접전이냐구요? 하하. 호제리우 스투다르트 사무총장의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후보지명을 놓고 미국과 유럽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공정한 과정을 요구하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총재 선출도 기본구조는 비슷합니다. 24명으로 구성된 집행이사회에서 선출하는데, 29일 현재 국제통화기금의 투표권 비율은 미국이 16.75%로 가장 높고, 일·독·프·영 등 지분율이 높은 5개국이 단독 이사로 활동합니다. 나머지는 19개 그룹을 구성해 그룹당 1명씩 이사를 뽑습니다. 집행이사회에서 투표권 비율 5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총재가 되지만, 지금까지는 앞서 말씀드린 ‘합의’로 뽑았습니다. 신흥국들은 물론 국제통화기금에서도 리더십 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현재진행형인 유럽 부채위기 탓에 서방에서도 마냥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구제금융 제공 ‘서명권’을 쥔 총재가 유럽에 대한 자금지원을 주도하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지분구조는 수정을 거듭하긴 했지만, 20세기에 만들어진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21세기 경제력을 반영해서 새 틀을 짠다면 신흥국에서도 총재가 나올 수 있을 텐데, 언제쯤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면이 또 모자랍니다. 더 친절하기를 원하십니까? 전자우편 부탁드립니다.
전정윤 국제부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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