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섯알오름 현장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2007년 4월의 어느 날, 10여명의 유족이 거대한 구덩이 위에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옹기종기 모였다. 제주 4·3항쟁의 여진이 가시던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제주 인근의 ‘예비검속 대상자’ 252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돼 파묻힌 곳이다. 본래 일제강정기에 만들어진 근처 알뜨르 비행장의 탄약고가 있던 자리로, 1945년 8월 이후 미군이 진입해 폭파시켜 커다랗게 파였다. 일제의 퇴각을 상징하는 자리가 동족이 동족을 총으로 쏴죽이고 묻어버린 무덤으로 변신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빚어지는 갈등은 그 악몽의 재연처럼 느껴진다. 박하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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