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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3 19:13 수정 : 2012.04.18 11:05

노현웅 사회부 법조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룸살롱 황제’라 불리는 이경백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씨한테 수억에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현재까지’ 체포·구속된 경찰만 7명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부터 강남 쪽 파출소 근무자까지 소속도 다양합니다. 이씨가 입을 열면 옷 벗어야 할 경찰만 30~40명에 이른다는 풍문도 돕니다.

그렇다면 경찰과 유흥업소 업자들은 어떤 관계일까요? 민감하고도 어려운 주제고, 그쪽 업계 사정에 밝지도 않지만, 그저 최대한 친절히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자기고백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길지 않은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취재원의 강권에 못 이겨 룸살롱에 가 본 일이 몇차례 있습니다. 법을 어기거나 제 윤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부끄러운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하여튼 그 가운데 처음으로 ‘경찰과 유흥업자들이 이런 관계구나’ 알게 된 기억입니다.

2006년 겨울, 저는 서울 ○○경찰서에 수습기자로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잠 못 자고, 씻지도 못하고,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유령처럼 인근 경찰서, 파출소를 돌고돌고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라도 취재하기 위해 매번 파출소까지 오는 기자가 신기했을까요?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순경과 친분을 쌓게 됩니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다, ‘소주 한잔 하자’ 의기투합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던 그는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고, 택시를 타고 이동한 곳은 불야성을 이룬 강남의 어느 골목이었습니다. 순경 꽁무니를 쫓아 난생처음으로 룸살롱이란 곳에 들어가 본 것입니다.

아아, 룸살롱 안에서의 그는 경찰 최말단 순경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삐끼(호객꾼)들은 그를 ‘형님’으로, 포스가 있어 보이는 어깨들은 그를 ‘아우’로 불렀습니다. 그는 마치 대한민국 경찰을 대표해 업소에 방문한 사절과 같았고, □□계장님, △△과장님 등의 안부가 오고갔습니다. 그때쯤에야 저는 용기를 내 “죄송한데 이런 곳 불편합니다”라 말하고, 룸살롱 밖으로 나섰습니다. 사담이 길었습니다만, 경찰과 유흥업소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돈과 향응으로 관계 기관을 매수하는 ‘관(官)작업’, 그 대가로 단속 정보를 흘리는 경찰에 대한 설명은 식상하잖아요.

대신 이경백씨의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북창동 삐끼 출신이라고 합니다. 서비스 마인드가 정말 투철했다고 하는군요. 한번 인연을 맺은 손님들이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잘했다고 합니다. 고객들한테 보내는 명절 선물만 수백 세트였다는 말도 들리고요. 이런 영업력을 눈여겨본 전주(錢主)들이 있었겠죠. 그들은 이씨를 영업사장으로 앉히고 룸살롱을 개장합니다. 승승장구. 특히 다소 밋밋했다고 하는 강남권에 ‘북창동식’ 밤문화를 이식하면서 이씨는 강남 룸살롱 업계의 대세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 기존 업자들과 알력 다툼도 있었겠죠. 이런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에 경찰의 협조가 없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씨는 고객을 모시듯 경찰과의 관계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하고 골프 레슨, 해외여행, 명품 선물 등으로 환심을 샀다네요.

그러던 이씨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씨로서는 ‘그렇게까지 했는데 날 구속해?’ 하는 억하심정이 생겼을 법합니다. 이제 경찰은 이씨의 입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최근 경찰의 정보라인은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파악하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7명 체포는 시작일 뿐이다’, ‘총경급 간부만 20~30명이 연루돼 있다’, ‘경찰 최고위층도 연루돼 있다’ 설익은 소문도 무성합니다. 검찰은 차근차근 이씨 주변의 돈 흐름과 ‘이경백 리스트’라 불리는 명단을 맞춰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사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한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원래 유흥업소에 대한 단속업무는 검찰과 경찰이 분담했습니다. 그때는 지금만큼 유착관계가 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업자 입장에서도 어느 쪽이 치고 들어올지 몰라 ‘작업’이 어려웠을 것이고, 검경이 서로 눈치보는 측면도 있었겠죠. 그러다 검찰이 단속업무에서 손을 떼고, 지금은 경찰 혼자 유흥업소를 단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견제 없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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