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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20 20:04 수정 : 2012.04.20 20:04

김외현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비참하지? 현역 국회의원이 낙선한 뒤의 간난신고를 묘사하는 여의도 정가의 표현이야. 오늘 주제는 이 사람 아닌 ‘좀비’들의 이야기거든.

4·11 총선에선 현역 의원 가운데 55명이 후보 등록까지 했다가 떨어졌으니, 이들이 곧 ‘사람도 아닌’ 삶을 살게 되는 거야. 여기에 아예 공천을 못 받은 이들과 재도전에 나섰다 고배를 마신 전직 의원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늘겠지.

‘사람도 아닌’ 존재라고는 해도, 사실 저마다 사정은 달라. 갈 곳이 있는 낙선자와 없는 낙선자로 나뉘거든. 변호사, 의사·약사 출신은 돌아갈 곳이 있지. 특히 변호사는 국회의원 시절 맺은 다양한 인맥 덕에 ‘정치인 전관예우’를 받는 경우도 많아. 교수나 작가, 연구원 출신은 대개 대학으로 가고, 연예계나 재벌·기업가 출신도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가지.

그러나 젊어서 보좌관이나 당직자로,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해 국회의원이 된 경우엔 갈 곳이 없어. 시민사회, 언론, 관료 출신도 마찬가지야. 말 그대로 직업이 ‘정치인’이지. 원래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장 생계가 힘들어져. 배우자가 직업이 있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면 집 팔고 차 팔고 친척과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는 수밖에. 그나마 여당 소속이면 청와대나 공공기관에 들어가기도 해. 이번에도 대선 때문에 일부 낙선자들은 당내 각 대선후보 캠프와 관계 설정을 고민하더라고.

생계도 생계지만, 앞으로 다시 선거에 나갈 거냐 말 거냐의 문제도 고민해야 돼. ‘쿨’하게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도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결단이야. 국회의원을 관두면, 국회 본회의 안내방송의 환청이 한동안 귀에서 맴돈대. 얼마나 가고 싶으면 그러겠어.

권토중래를 꿈꾸는 사람들은 일단 지역구에 다시 나서 와신상담을 하게 돼. 자기 지역구의 당협위원장(민주통합당은 지역위원장) 자리를 유지하며 주민과 당원, 지지자를 꾸준히 만나지. 다른 한편으론 국회와 중앙당을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각종 기회를 노려. 당에서 지도부 선거, 지방선거, 보궐선거를 치르거나 각종 특위 활동에 나설 때 어떤 자리가 튀어나올지 모르거든. 그런 타이틀은 다음 선거를 위해 잘 챙겨둬야 해. 여의도 근처 호텔 사우나 및 헬스클럽에서 낙선자들이 자주 눈에 띄는 건 그런 이유래.

이런 활동도 돈이 있어야겠지. 하지만 위아래 어디서도 돈을 끌어올 수가 없어. 정당법엔 중앙당과 시·도당만 있고 지역구 정당조직이 없어서, 정당이 당협을 지원할 수가 없어. 또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이 아닌 당협위원장의 후원회 결성을 허락하지 않거든. 자연히 비리의 유혹이 생길 수밖에. 구청장·시의원·구의원 선거 때마다 공천 과정에서 당협위원장이 돈을 받았네 어쩌네 하는 고소·고발이 불거지는 배경이기도 해.

결국 돈 없는 후보가 낙선하면 지역구 기반이 씨가 말라버려 정당정치가 훼손되는 형태라는 지적이 나와. 과거 중앙당이 지구당에 돈을 쏟아붓는 ‘고비용 정치 구조’가 각종 비리를 유발한 탓에 돈줄을 묶어놓은 건데, 또다른 폐단이 나타난 셈이지. 하지만 개선을 하려 해도, 현역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경쟁자를 키워주는 방향에 큰 관심이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

낙선자들 앞에는 이런 좀비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고, 지금 당장은 아마 충격에서 헤어나지도 못했을 거야. 낙선했다 돌아온 어떤 이는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티브이만 보고 있더라. 그날로 티브이를 갖다버렸다”고 했고, 또다른 이는 “개표 결과를 보고는 마누라가 기절했다”고 뒷이야기를 털어놓더라고.

오늘 봄나들이 길에 혹시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낙선인사 보거든 그들 얼굴 잠시 떠올리며 기도라도 해주자고. 좀비 생활 잘 버티고 4년 뒤에 또 보자고 말이야.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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