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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04 19:58 수정 : 2012.10.17 17:06

<한겨레> 이형섭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국제부의 친절한 기자 이형섭입니다. 이번에는 국제면을 후끈 달구고 있는 중국의 천광청 사건을 친절하게 풀어드릴까 해요.

최근 며칠간 까만 선글라스를 쓴 그의 사진과 기사를 여러건 보셨겠지만 도대체 뭐가 뭔지 헷갈리시죠? 사실 국제부 기자들도 여러모로 헷갈리는 사건이에요. 사건의 당사자인 천광청과 미국, 중국 당국도 갈팡질팡 행보를 보여 왔으니, 관전자들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힘들 법도 하죠.

시각장애인 천광청(40)은 유명한 중국의 인권운동가예요.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2005년이에요. 변호사인 그는 중국의 ‘한 자녀 정책’에 따라 당국이 주민들에게 낙태와 불임을 강요하고 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어요. 이 소송은 중국 밖에서도 화제가 됐어요. 맹인이면서 20대까지 문맹이었다가 독학으로 공부해 변호사 자격증까지 딴 입지전적인 그의 이력이 겹쳐지면서 큰 파장을 불렀죠. 중국 당국이 불같이 화낸 것은 당연하겠죠. 그는 2006년부터 형무소 생활을 하다가 2010년 9월 석방됐어요.

그런데 석방이 끝이 아니었어요. 산둥성 관리들은 이난현 둥스구촌에 있는 그의 집 주변에 콘크리트 담을 설치하고 그를 감금했죠. 외부와의 접촉은 극도로 제한됐어요. 천광청은 공안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폭행하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어요. 사실상 온 가족이 형무소 생활을 했던 셈이죠. 중국과 외국의 인권운동가들은 이런 처사를 여러차례 비판했지만 산둥성은 요지부동이었어요.

그랬던 그가 지난달 22일 야음을 틈타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탈출해 480㎞ 떨어진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으로 갔으니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게 뻔하죠. 그는 탈출한 뒤 자신의 처지를 고발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어요.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열악한 인권상황이 까발려지는 수모를 당한 셈이죠. 하지만 미국도 속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그를 보호하거나 미국으로 망명시킨다면 중국이 크게 반발할 게 뻔하니까요.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뒤얽히다 보니 이 탈출 드라마는 그 뒤 꼬이고 또 꼬여버렸어요. 미국은 ‘중국에 남아 인권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천광청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며, 지난 2일 그를 대사관에서 내보내 병원에 입원시키는 방식으로 중국 손에 넘겨줬어요. 그런데 다음날 천광청은 ‘미국이 나를 대사관에서 떠나도록 권했다’며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밝혔어요. 미국이 중국과의 마찰이 두려워 천광청을 배신한 것인지, 천광청이 남으려고 했다가 막상 나와보니 생각이 바뀐 것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아요. 천광청의 가족은 여전히 둥스구촌의 집에 감금돼 있는 상태예요.

이런 사건은 앞으로 더 일어날 수 있어요. 얼마 전 충칭시 서기 보시라이를 배신한 부시장 왕리쥔이 미국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던 것처럼 미국의 영사관과 대사관은 중국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도피처가 돼가고 있어요. 1981년 천안문 사태 당시 인권운동가였던 팡리즈가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뒤 미국에 망명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지요.

안 그래도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중국의 인권상황에 관심이 많아요. 마치 한국의 보수세력이 북한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요. 그것이 상대를 공격할 좋은 무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 내에선 벌써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어요. 중국의 압력에 항복해 천광청을 중국 손에 넘겨줬다는 이야기죠. 확실히 미국이 천광청에게 간곡히 망명을 권유한 것 같지는 않아요. 망명시켰다가 그 뒷감당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중국은 미국에서 자국의 인권상황을 지적할 때마다 ‘내정 간섭’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죠.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로 불리는 두 강대국은 현재 전세계를 무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중국이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에 따라 아시아 전역과 인도양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팽창정책을 펴고 있고, 미국은 ‘아시아 중시’를 주창하며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 또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교류를 하고 있어요. 미국은 중국 상품의 최대 수입국이고 중국은 미국 농산품의 최대 수입국이에요. 중국은 미국 채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죠. ‘경쟁’과 ‘협력’의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두 나라의 관계가 한 맹인 인권변호사의 거취에 좌우될 상황에 처해 있는 셈이에요. 북핵 문제 해결 등에서 두 나라의 공조가 매우 중요한 한반도의 미래 또한 그 영향권 안에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하죠.

<한겨레> 이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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