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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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도미노 금융위기 속 나홀로 건실긴축완화 통해 이번엔 희생할 때 문제는 그리스가 아니라 독일이다. 유로화가 도입된 이후 유로존을 여행하면 욕 나오는 때가 많다. 물가가 미국보다 거의 2배나 되기 때문이다. 지금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그리스나 옛 소련의 작은 공화국 에스토니아에 가도 미국보다 싼 느낌이 없다. 유로가 달러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유로는 1999년 7월 도입 때 달러와 거의 1 대 1로 시작해,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에는 최고 1.60달러 선 이상까지 치솟았다. 유로는 유럽 부채위기에도 1.3~1.5달러 선에서 등락하고 있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으로 통화가치를 비교하는 빅맥지수는 올해 1월 미국이 4.20달러이고 유로존은 4.43달러이다. 유로를 쓰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미국보다 비싼 통화를 짊어지고 살아왔다. 이는 수출경쟁력을 낮추고 경상수지를 악화시켰다. 이득도 있었다. 비싼 통화로 구매력이 높아지고 소득도 겉으로는 올랐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 번 돈이 아니었다. 유로존에 가입하자 국외 투자자들이 마구 빌려준 돈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남유럽 국가들이 금리도 높은데다, 유럽중앙은행이 버티는 유로존이라는 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현재 국내총생산의 165.3%나 되는 부채를 짊어진 배경이다. 독일으로서는 얘기가 다르다. 독일은 미국보다 모든 측면에서 건실한 경제이다. 독일은 지난해 유럽 부채위기 와중에서 2.7% 성장으로 서방 선진국 중 가장 높다. 유럽연합의 평균 실업률이 9.7%이고 서방 선진국들이 보통 10% 내외인데, 독일은 5.7%이다. 독일의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고려하면,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깝다. 경상수지는 1490억달러 흑자로 중국·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3번째이다.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유로가 독일만의 통화라면, 달러에 비해 가치가 지금의 2배 이상으로 절상돼야 한다. 독일과 경제 건실도가 비슷한 스위스의 프랑은 유로가 최저치이던 2000년 10월부터 줄곧 가치가 올라, 금융위기 이후에 2~2.5배까지 절상됐다. 빅맥지수를 봐도, 스위스는 6.81달러다. 독일도 이 정도의 통화가치와 빅맥지수를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독일은 자신의 입장에서 저평가된 유로화라는 통화를 가지고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유로존이라는 안정적 거대시장을 확보하는 이점을 누렸다. 경제사가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유로화가 막 출범한 2000년 <더 캐시 넥서스>(현금의 지배)라는 저서에서 “비대칭적인 재정의 문제가 독립적인 국가들 간의 통화동맹을 빠르게 해체하는 요인이었다”며 이는 “유럽통화동맹 해체의 유사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의 예언은 12년이 지난 지금 실현되고 있다. 비대칭적인 재정문제는 독일 중심으로 짜인 유로존의 재정협약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유로존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흐트조약은 건전한 재정을 요구하고, 통화 남발을 통한 유로화 절하와 인플레를 용인하지 않는다. 독일로서는 수출과 경제가 잘 돌아가는데, 유로를 평가절하해 인플레로 서민생활을 위협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리스 등 재정위기 국가가 저항 없이 택하는 방법은 통화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올리고 인플레로 부채 실질부담을 완화하는 거다. 유로존 족쇄에 묶인 그리스 등은 고평가된 통화에 짓눌린데다, 긴축으로만 일관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퍼거슨은 유로존 해체를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유로화의 절하와 물가상승을 용인”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긴축 대신 성장정책을 주장하는 것도 사실 이 방안을 말한다. 아니면,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 독자 통화로 돌아가 통화증발과 물가상승으로 부채를 줄여야 한다. 그 비용을 알 수 없고, 무엇보다 유로존 해체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유로존을 지키려면 수혜자인 독일이 더 돈을 풀고, 유로존 재정·통화정책을 일시적이라도 완화해 자국 경제를 희생해야 한다. 독일은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상관없이, 독일이 안 바뀌면 유로존 위기는 심화될 거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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