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
[토요판/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 매일 아침, 1면부터 32면까지 신문 전체를 꼼꼼히 읽지만 도대체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고민이라는 독자 나꼼꼼씨. 나꼼꼼씨를 위해 ‘친절한 기자들’이 나섰습니다. 전문용어만 즐비하고, 조각조각난 팩트와 팩트 사이에서 길을 잃은 뉴스의 실체와 배경, 방향을 짚어드립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궁금한 뉴스가 있을 땐 언제든지 kind@hani.co.kr로 전자우편을 보내주세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뽑힌 박근혜 의원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 왔던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뭔가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사진이 찍혔어. 많은 사람들이 뭐가 못마땅했을까 궁금해했지. 김영삼 쪽은 이런 시각을 부인해. 김기수 비서실장은 “무슨 어린애인가. 평소 표정이다. 특별히 감정을 드러낸 게 아니다”라며 대뜸 “어른을 안 모셔 봤냐”고 묻더군. 나이 들면 표정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야. 자료를 찾아보니 그렇긴 해. 최근 몇달 사이 강창희 국회의장,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다녀갔는데, 매번 사진 속 김영삼은 심드렁할 뿐 좀처럼 웃고 있지 않아. 전문가 의견도 있어. 권장덕 성형외과 전문의(대한성형외과의사회 대외협력이사)는 “나이가 들면 표정근육이나 안면신경이 약화하는데, 본인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설명해. 본인은 표정에 변화를 줬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대로일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그날 김영삼은 표정뿐만 아니라 말로도 마뜩잖은 기분을 표현한 것 같아. 박근혜에게 “지금 나라가 참 어렵다. 하여튼 그래서 잘하쇼”라고 했거든. ‘잘하쇼’, 그 한마디로 그의 불만을 읽을 수 있다면 너무 과장일까? 김영삼에게 의도가 있었다면, 이유는 역사 때문일 거야. 1960~70년대 김영삼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맞서 싸운 불굴의 민주투사였어. 1969년 김영삼은 박정희의 3선개헌과 장기집권 시도를 맹렬하게 비판했지. 집권 공화당은 그를 ‘좌파’라고 공격했어. 김영삼의 집 앞에서 괴한들이 습격해 승용차 창문에 초산이 든 병을 던진 사건도 있었지. 김영삼은 무사했지만 차량 페인트와 아스팔트가 녹았다고 해. 김영삼 쪽에선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테러’라고 했지. 유신 선포 뒤 ‘선명 야당’을 내건 김영삼의 대여투쟁은 1979년 들어 절정으로 치달았어. 그해 8월 와이에이치(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회사 쪽의 부당한 폐업 철회 등을 요구하며 야당인 신민당 당사로 들어왔어. 당시 52살의 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보호에 나섰지. 경찰이 당사를 감시하는 데 항의하며, 김영삼은 작전을 지휘하던 마포경찰서 보안과장의 따귀를 올려붙이기도 했어. 결국 경찰력이 당사에 투입됐고, 농성하던 노동자들도, 김영삼과 의원들도 끌려나왔지. 이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추락사했고 김영삼은 사흘 동안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휘해. 다음달인 9월 법원은 김영삼에 대해 당 총재 권한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2일 오전과 오후에 잇따라 서울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를 예방해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