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21 20:40
수정 : 2012.09.25 16:17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형사부에서 잠자는 4대강 미제사건
여야 공천비리 의혹은 편파적 배당
늦은 밤 서울 서초동 거리에서 올려다보면 언덕 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청사에는 불 밝힌 사무실이 여럿이다. 거의 매일 밤 보는 풍경이다. 검찰은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마냥 뿌듯하진 않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무실의 상당수는 형사부 검사실이다. 형사부 검사들은 야근을 밥 먹듯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경우, 검사 한 사람이 한달에 배당받는 사건은 300건 이상이다. 하루에 7~8건씩 처리해도 미제사건을 줄일 수가 없다. 6년 전 통계이긴 하지만, 형사부 검사의 평균 퇴근시간은 밤 9시20분이고, 87.7%가 주 3회 이상 야근을 한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형사부마다 검사 수는 지난해 8명에서 6명 정도로 줄었다. 사건은 그대로이니 부담만 커졌다. 대부분 80~100건씩의 미제사건을 안고 허덕댄다. 여러 사건의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섞여 조사를 받는 ‘도떼기시장’ 같은 사무실에서, 형사부 검사들은 매일같이 ‘지게’로 일거리를 져 나르는 머슴처럼 일해야 한다.
그런 형사부에 중요사건이 잇따라 배당됐다. 4대강 관련 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우건설이 4대강 사업 경북 칠곡보 구간 공사에서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는 시민단체의 고발 사건은 얼마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됐다. ‘4대강 사업 공사구간 배분 과정에서 건설사들은 담합했고, 공정위는 고발도 하지 않는 직무유기를 저질렀다’는 고발 사건은 형사7부에 배당돼 있다.
고발 사건을 담당 형사부에 넘기는 것이 비정상은 아니다. 형사부라고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4대강 건설사 담합 사건에서도 검찰은 지난 7월 공정위를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검찰은 지금껏 압수물을 분석하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미제사건을 안고 있는 검사들은 연말쯤이나 돼야 관련자들을 소환할 짬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대우건설 4대강 사업 비자금 사건도 진행중인 대구지검 특수부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고발인 조사부터 미루고 있다. 정작 대구지검은 법정 증언으로 드러난 대우건설의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 의혹을 두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두어달 안에는 4대강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기대하기 어려울 성싶다. 공교롭게도 그 두어달은 대통령선거 기간이다. 그런 사정까지 고려해 형사부에 사건을 배당한 것일까. 과중한 업무부담에 특수수사의 경험도 적은 형사부에 사건을 맡긴 것 자체가 수사를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 수 있다. 마치 가마솥 밑에서 타는 장작을 꺼내 물이 끓지 않도록 하는 것(釜底抽薪·부저추신)과 같은 형국이다.
의심을 살 만한 일은 또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새누리당 공천비리 의혹은 멀리 부산지검에서 수사하도록 했지만, 야당 쪽과 돈이 오갔다는 양경숙 사건은 선거 관련 사건 또는 사기 사건인데도 검찰총장의 칼이라는 대검 중수부가 굳이 서둘러가며 맡았다. ‘정무적 고려’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런 결정은 누가 내렸을까.
검찰은 일사불란한 조직이다. 검사동일체의 원칙과 상명하복의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다. 수뇌부의 뜻은 말단까지 전달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선 관련자 소환이나 압수수색부터 기소 방향까지 수뇌부에 보고하고 결심을 얻는다는 것이 검찰 안에선 상식이다. 더구나 지금의 한상대 검찰총장은 조직 장악력이 높은 것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하나하나 관심을 표하고 ‘정답’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역시 형사부가 맡았던 민간인 사찰 사건 재수사나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터 매입의혹 사건에서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사이에 여러 차례 마찰이 있었다는 소문은, 그래서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내려진 결정에 정치적 고려는 없었을까. 또 그런 정치적 고려는 밤새워 일하는 대다수 검사와 직원들을 위한 것일까.
주요 후보들이 결정되면서 대통령선거전이 사실상 본격화됐다. 때맞춰 검찰은 21일 전국공안부장검사회의를 열어 선거사범 수사 원칙을 밝혔다. 선거전에서 ‘한상대 검찰’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눈여겨볼 일이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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