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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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캠프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한 김성주(56) 성주그룹 회장은 ‘커리어우먼’으로 성공을 바라던 여성들에겐 ‘영웅’ 같은 존재였어. 재벌가 출신이라는 자신의 배경을 버리고 바닥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실력을 다지며 세계적인 최고경영인(CEO)이 됐다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지.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영웅담을 들으며 세계무대 진출을 꿈꾼 여성이라면, 누구나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음직도 해. 그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치권 한복판에 나타나자 다들 깜짝 놀랐어. 지난 12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위원장 임명식에선, 173㎝의 큰 키에 짧게 자른 머리,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정 스키니진과 빨간 스니커즈(운동화), 그리고 빨간 가방, 여의도 정가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그의 패션이 기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지.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말이었어. 김 회장은 “고학력 여성이 ‘솥뚜껑 운전’만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훈련된 인원들이 일할 게 너무 많은데, 다만 (스스로 일자리를) 안 찾고 불평하기 때문에 (취업이 안 되고) 그렇다”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어. 2010년 전경련 특강 발언도 재발견됐어. “약점이나 조금만 한계가 있으면 다 눈물 찔찔 흘리고 도망가요. 아시죠? 잘못하면 남자 탓하고 도망가요. 그런 여자들 제가 어떻게 시켜요”라고 했어. 종합하면, 결국 ‘여성들아, 너도 노력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는데, 왜 불평하고 남자들 탓하며 눈물만 짜고 있니?’라는 얘기지. 사실 그런 자신감이야 누가 나무라겠어. 단지 비싼 등록금, 구직난과 주택난 등등으로 결혼·출산마저 포기한다는 젊은층이 듣기 불편했지. 육아 핑계로 사회생활 포기하지 말라며 “애 젖 먹이면서 주방에 앉아 구글에 들어가 웰빙 진셍쿠키 만들었다고 올리면 전세계에서 주문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말은, 특히 온갖 비판의 대상이 됐어. 인터넷엔 김 회장을 비꼬는 이야기가 넘쳐났지. 여대생 시절 ‘성공한 기업인 김성주’에 열광했다는 ㄱ(36)씨가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사람이 무너지는 게 가슴이 아프다”고 할 정도로. ㄱ씨는 어쩌면 김 회장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건지도 몰라. 정말 밑바닥에서 올라간 거라고 보기엔, 김 회장은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김성주 회장은 집안이나 학교 배경만으로도 뭇 사람을 주눅들게 해. 대구 지역 연탄 판매로 시작해 전국적 그룹으로 성장한 대성그룹 창업주 고 김수근 회장의 막내딸로, 연세대(신학, 사회학 전공)와 미국 애머스트대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런던정경대(LSE) 등 국내외 유수 대학을 두루 거쳤거든. 국제결혼에 반대한 아버지로부터 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유학을 중단하고 고생을 했다고는 해. 하지만 나중엔 결국 아버지 회사로 돌아와 아버지 집무실 옆방에 ‘패션사업부’ 간판을 걸어 사업을 시작했어. 1990년엔 아버지로부터 빌린 3억원으로 자기 회사를 열었지. 김 회장은 “이자 쳐서 아버지께 모두 갚았다”고 하지만, 이후로도 대성과의 관계가 아주 없었다고 보긴 힘들어. 1998년 외환위기로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김 회장은 대성의 지급보증을 받고 30억을 대출받았지. 김 회장이 ‘차세대 여성기업인’으로 주목받게 된 과정도 흥미로워. 세계적 유명세를 탄 계기는 1997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선정한 ‘차세대 글로벌 지도자 100명’에 들면서부터인데, 당시 이 ‘100명’에 든 한국인은 김 회장과 더불어, 정보근 한보그룹 회장(이하 당시 직함), 정몽규 현대차 회장, 김석동 쌍용투자증권 사장, 이미경 제일제당 이사 등 모두 재벌 2~3세였어.
김성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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