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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11 20:39 수정 : 2013.01.11 21:37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해 9월14일 헌법재판관 퇴임식을 하던 때의 모습. 법조계에선 그가 그동안 개인 이해를 앞세워왔다는 박한 평가가 많다. 뉴스1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후배 신망 잃은 인물에 코드인사
인사청문회 어떤 말 오갈지 궁금

지난해 9월의 어느 일요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구내 언덕길을 절뚝대며 혼자 걸어오는 김신 대법관과 마주쳤다. 대검찰청 강당에서 친지의 결혼식이 있어서 왔다 가는 길이라고 한다. 관용차는 어디 두고 걸어가시냐고 묻자 당연한 일을 뭘 묻느냐는 표정으로 “휴일인데, 어떻게 운전기사를 쓸 수 있나요? 택시 타면 되지요”라고 말한다. 부산에서 이제 막 전근한 참이었던 김 대법관은 소아마비 탓에 불편한 걸음으로 한참이나 언덕길을 내려갔다.

김 대법관이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2011년 퇴임한 이홍훈·김지형 전 대법관은 휴일이면 관용차 대신 2000년식 아반떼를 직접 운전해 대법원으로 출근했고, 양승태 대법원장도 대법관 시절 주말엔 배기량 999㏄인 경차를 몰았다.

2005년 심장마비로 46살에 타계한 한기택 판사는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 관용차를 배정받은 뒤 단 1초도 부인과 자녀를 태워주지 않았다고 한다. 공직자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부인은 남편의 장례식 때 동료 판사가 관용차로 장지로 가자고 권해도 “남편이 원하지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홍훈 전 대법관도 1990년 김천지원장 시절 부부 동반 모임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부인을 관용차에 태우지 않고 택시로 움직이게 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재임기간 동안 가족들이 관용차를 타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단속했다고 한다. 작은 일에서부터 그렇게 공과 사를 구분해, 삼가고 또 삼가는 것은 공직자, 특히 심판의 책무를 맡은 법관의 최소한의 덕목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니 특별히 내세울 일도 아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그런 기준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 같다. 관용차 문제로 입길에 오른 일부터 여럿이다. 고유가 시대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승용차 홀짝제가 시행되던 2008년의 일이다. 당시 헌법재판관이던 이 후보자는 자신이 멀리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산다며 관용차가 홀짝제에 걸리는 날 쓰는 개인 차량의 기름값을 대 달라고 헌재 사무처에 요구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번호판 끝자리가 다른 관용차를 하나 더 내달라고 졸라, 끝내 받아냈다고 한다. 외교관인 딸이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 근무할 때는 관용차에 딸을 태워 함께 출근했다. 그는 출근 방향과 시간이 맞아 동승했다고 당당히 해명했다.

이러고서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와 관련해 이런저런 불편한 기억을 하나둘씩 갖고 있다. 개인적 강연의 원고를 쓰라는 등 사적인 일에 동원했다거나, 절차와 규정에 맞지 않는 편의를 요구했다거나, 개인 돈 대신 매번 나랏돈을 쓰려고 했다거나 하는 따위다. 크게 문제 삼기도 마땅찮은 자질구레한 일들이지만, 다 모아보면 됨됨이가 그려진다. 법원과 헌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후배 법조인들은 대부분 그에 대해 비슷한 평가를 내리거나 아예 입을 닫는다. 동료로서 존경하고 인정할 만한 ‘베스트’는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 이해를 앞세운다는 박한 평가도 많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집단의 가치기준에 못 미치는 이를 중용하면 구성원들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처신하든 ‘코드’만 잘 맞추면 출세한다는 왜곡된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조직을 갉아먹는 일이다.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후보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돼, 주요한 사건마다 거의 빠짐없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를 묻는 사건에서는 주심으로서 평의와 선고를 하염없이 미뤘다. 그렇게 한 결과가 이번 지명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본받으려는 이도 앞으로 나올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헌재는 크게 망가진다.

2006년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점거까지 해가며 전효숙 전 재판관의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막아 끝내 자진하차시켰다. 절차 문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코드 인사’라는 억지 이유였다. 그때와 달리 이번 이동흡 후보자의 판결 성향은 확연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곧 시작될 인사청문회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궁금하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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