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어머머!” 18일 저녁 스마트폰을 보던 아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탤런트 박시후씨가 올라 있었습니다. 박씨가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했다는 기사가 좌르륵 떴습니다. ‘헐, 그 멀끔한 박시후가?’ 누리꾼들은 설왕설래하며 댓글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박씨는 최근 종영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장띠엘 샤’로 불리며 명품 패션업체의 한국지사 회장 차승조를 연기했습니다. 자신이 <힐링캠프>에서 말한 것처럼 “멀끔한” 이미지와 세련된 패션으로 35살의 박씨는 뒤늦게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때 이런 사건이 터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방송·연예계를 담당하는 음성원 기자입니다. 담당 영역 탓에 ‘사건의 진상이 뭐냐’는 질문에 시달리다 ‘친절한 기자’ 꼭지에 데뷔하게 됐습니다. 우선 사건을 간단히 정리해보죠. 박씨와 ㄱ(22·여)씨, 박씨의 후배 탤런트 ㄴ씨가 15일 새벽 1시30분께까지 서울 청담동에서 술자리를 했습니다. 술자리가 파하고 박씨와 ㄱ씨는 청담동 박씨 집으로 갑니다. ㄴ씨가 ㄱ씨를 박씨에게 소개했다는 얘기도 있군요. 그런데 ㄱ씨는 이날 박씨를 강간 혐의로 서울서부경찰서에 고소합니다. ㄱ씨는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고, 박씨는 “서로 남녀로서 호감을 갖고 마음을 나눈 것이지 강제적으로 관계를 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합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 내용도 공개됐습니다. 첫번째 시시티브이는 술자리에서 나갈 때를 담았습니다. 이때 ㄱ씨는 계단을 혼자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시시티브이에는 ㄱ씨가 ㄴ씨에게 업혀 박씨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잡혔습니다. 짧은 시간 간격에서도 ㄱ씨 상태가 많이 달라 보입니다. 경찰은 시간이 흐르면서 ㄱ씨 몸에 취기가 퍼져 혼자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됐을 가능성과 ㄱ씨가 그렇지 않은데도 업혔을 가능성을 둘 다 고려하겠답니다. 고소인 조사를 한 경찰은 시시티브이 분석과 참고인 조사를 하고 24일에는 박씨를 부를 계획입니다. 정황으로 보면 사건 해결의 열쇠는 박씨와 ㄱ씨가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함께 있던 ㄴ씨가 쥐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이 엇갈리면 박씨와 ㄱ씨 간 대질도 할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진실을 알 방법도 없고, 이런 심각한 사안에 대해 짐작을 말한다면 무책임한 것이겠지요?
다만 왜 연예계 스타들과 연예인 지망생 사이에 잊을 만하면 이런 ‘시비’가 벌어지는지 짚어나 보렵니다. 지난달에는 가수 고영욱씨가 10대 연예인 지망생을 성폭행하고 여중생을 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2011년 11월에는 힙합 가수 최아무개(30)씨가 연예인 지망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연루된 사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연예기획사 대표 장아무개(52)씨가 소속 아이돌 가수들과 함께 연습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연예인 지망생들은 이렇게 일부 악덕 연예기획사 대표나 피디의 제물과도 같았습니다. 연예계 진출이 워낙 힘드니 인맥을 이용하려다 불의의 피해를 본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박씨에게 불리한 점도 이 대목입니다. 물론 이미지로 먹고사는 톱스타를 일부 악덕 연예기획사 관계자들과 비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톱스타 역시 연예기획사 대표처럼 연예계 진출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지니니까, 연예인 지망생과 잠자리를 같이한 것만으로도 오해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추측이 난무합니다. ㄱ씨의 의도적 접근 가능성을 주장하며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ㄱ씨라며 공개한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과도한 관심이 2차 피해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ㄱ씨로 오인받으며 사진까지 공개된 여대생은 졸지에 ‘꽃뱀’ 신세가 돼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ㄱ씨에 대한 근거 없는 글도 ㄱ씨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박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성원 문화부 방송미디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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